#미디엄 #S #드라마 #오토기
원본 by haito
=======================
“─샬레를 그만두고, 키보토스를 떠날 거야.”
오토기는 할 말을 찾고 있었다.
대답을.
‘그렇구나─잘 지내!’ 같은 산뜻한 대사를.
하지만 역시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던 탓일까.
이른 아침의 한적한 승강장, 흘러나온 것은 떨리는 세 글자뿐이었다.
“…어째서?”
어느새 전철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당혹감의 잔향을 걷어 가듯, 첫차의 문이 열린다.
사실─선생과는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고, 오토기가 탈 전철은 다다음 전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수도 없어서 남자를 따라 칸에 올라탄 소녀를 대체 그 누가 책망할 수 있을까.
여기서 배웅해 버리면, 영원한 ‘안녕’이 될 터였으니까.
선생과 학생, 차내에는 두 명뿐.
비쳐 드는 아침 햇살 때문일까.
오토기의 눈에는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 째서?
그, 그러니까─왜 그만두는 건가 싶어서!
뭔가 그, 안 좋은 일이라도…있었어?”
알고 있었다.
그는 어른이다,
그런 아이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 거라고.
설령 그렇다 한들.
고민이 있다면─그가 그렇게 해주었듯, 이번에는 자신이 상담을 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소망은 무너져 내렸다.
바로 다음 순간, 그가 품속에서 꺼낸 물건을 보고서.
“그건…….”
“‘시간제한’이야. 나는 이제…이 세계에는 머무를 수 없단다, 오토기.”
다 닳아가는 카드였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어른의 카드가 가장자리부터 재가 되어 바스러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 방주에서 만났던 또 다른 한 사람처럼.
긴 세월의 끝,
아련한 청춘의 최후의 최후─
그에게 허락되었던 신비가 바닥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토록 수많은 기적을…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남자는 바라왔었으니까.
“알 수 있거든.
물론 이곳에 계속 남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언젠가는 분명, ‘그들’과 똑같이 되어버리고 말아.”
냉소적이던 검은 양복을 떠올리며, 선생은 평온하게 웃고 있었다.
어른의 카드는 닳아 없어졌고, 싯딤의 상자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는다.
그런 선생에게─역할을 마친 주인공에게 세계가 계속해서 응해줄 리 만무했다.
답은 거절이라는 걸, 어쩐지 자연스레 알아버려서.
“죽는 건 아니야. 걱정하지 마,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그렇구나.”
카드의 잔해를 거두어 넣자마자, 환승역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오토기는 할 말을 찾고 있었다.
‘그러면─응, 나중에 어디선가 또 봐!’ 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져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전철에서 내린 것은 어째서일까.
낯선 역과 낯선 개찰구.
그의 뒤를 쫓아가 버리는 것은 왜일까.
“…아무에게도.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 선생님.”
“응, 맞아. 물론 메시지는 남겨두었어. 내가 돌아간 뒤에 모두에게 공개될 예정이란다.”
다음 열차도 둘뿐이었고, 쓸쓸한 대화만이 오갈 뿐이었다.
그렇겠지.
샬레와 가까운 처지였던 오토기는 잘 알고 있었다.
선생이 떠난다는 걸 알아버린다면, 학생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교통망은 분명 마비될 테고, 몇몇 수인들은 폭주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것이 최선이라고.
그 정도는 오토기도 알고 있어서,
“혼자였지.
나랑 마주치지 않았다면, 선생님은…혼자서, 돌아갈 생각이었던 거네.”
“응, 린 짱이 배웅해 주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뭐, 처음 왔을 때도 그랬으니까.
조금 아쉽기는 해도, 이건 이것대로 괜찮아─”
긴 이야기의 종막을 앞두고, 아침 하늘과 회전하는 헤일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샬레의 선생은 작게 숨을 토해내다─문득 눈앞을 내려다본 바로 그 순간 알아차렸다.
어깨가 떨리고 있다.
우연히 마주친 학생,
결코 얕지 않은 교분을 나누었던 그녀는…….
“…오토기?”
“선생님? 왜 그래, 그렇게…엣헴, 빤히 쳐다보고.”
울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너무 눈부셨던 탓에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서야 비로소 그 홍채에 비친 눈물을 깨닫고…그런데도 숨길 길이 없어서.
기억이 눈물에 녹아 나오듯 꾸밈없는 고백이 흘러나왔다.
“저기 말이야, 전에도 이야기했던가.
스나이퍼라는 보직 때문일까.
임무가 끝날 무렵이 되면…나는 가끔 무서워질 때가 있어.”
관측수조차 두지 않는 경우, 오토기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다.
통신마저 끊고 나면 그녀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바라보아지는 일은 없다, 그 누구도 알아채 주지 않는다.
그대로, 이대로 잊혀 버린다면,
여기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면.
몇 시간이고 고독이 지속되면, 조금은 무서워져서…….
“…그래서, 기쁜 거야. 후후,
제대로 말하진 못하겠지만 말이야.
임무가 끝나고, 동료들이 나에게 달려와 주면─정말로, ‘살았다!’ 하는 기분이 들어.”
길게 늘어지던 그림자를 기억하고 있다.
감시 임무를 마친 해 질 녘, 동료들의 발소리를 잊지 않는다.
그러니까…그러니까.
오토기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혼자였다면,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거라면?
그것은…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하고.
“…싫어. 이대로, 헤어지는 건.”
찾아 헤매던 말 대신 흘러나온 것은 본심이었다.
선생과 학생이니까 ‘그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자신은 졸업할 테고, 그렇게 되면 인연도 멀어질 것이다.
‘언제까지나’를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다를 터였다.
잘 말할 수 없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런데도─아침 해는 떠오르고, 다음 역은 오고 만다.
“미안, 이건 내 이기심일지도 모르겠네.
선생님은 ‘이걸로 됐다’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다면, 역시…할 말은 없지만,”
조그만 희망을 품고, 오토기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방울을 아침 햇살이 투과하며 투명한 연둣빛 안광이 그를 꿰뚫었다.
스나이퍼도 선생도, 말하자면 무대 뒤의 존재다.
주역은 포인트맨이나 학생들이고,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임무.
그러니, 그대로─그대로 사라지는 게 정답이라고 그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면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다,
배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쓸쓸하단 말이야.”
청춘을 떠나가는 선생은 이에 서글프게 웃고 있었다─그러니까, 그렇다면.
세 번째 환승 열차, 소녀는 또다시 뒤를 쫓는다.
투명한 호수, 타오르는 아침 해.
낯선 풍경이 펼쳐지는 노선, 어떻게 해도 그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노이즈가 달리는 세계의 가장자리, 텅 빈 차내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다.
『다음은─시라ㅁ리 구 라미ㅁ 타운─
이치가ㅁ에서 아키하바라, 인명 사고의 영향으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갈라진 음성이 소녀의 의식을 현실로 되돌려 놓는다.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싫다.’라고 중얼거려 보아도, ‘쓸쓸하다.’라며 매달려 보아도─이야기는 진작에 끝났고, 에필로그는 뒤집을 수 없다.
사라져 가는 헤일로를 바라보며 선생은 툭 중얼거렸다.
“오토기. 이제 돌아가야 해……. 목적지에 도착해 버려.”
전철은 가속한다.
망설임이 있었다.
이대로─어디까지고, 그를 따라가 버린다면?
키보토스의 바깥이다, 신비나 총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신은 자신으로 남을 수 있고, 그는 혼자가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지는,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안 될지도 모르겠네. 나는 그렇게 강하지 않은걸.”
전철이 감속한다.
체념이 있었다.
자신은 역시 평범한 사람, 어떻게 해도 생각하게 된다.
키보토스 바깥에서 살아간다면─동료나 가족, 봄부터 진학 예정이었던 대학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것을 버리고’라니, 그것은 그녀의 신조가 아니다.
“오토기, 모두에게 전해줬으면 좋겠어, 정말로 즐거웠다고─”
마지막 환승지, 분명 그의 고향으로 이어지는 열차.
노이즈가 섞인 목소리가 울리고, 녹슨 문은 닫혀간다─
어른은 웃으면서 그 너머로 사라져 간다.
망설임과 체념이 찰나의 순간 소녀의 뇌리를 스쳤고.
『다음은─오차ㅁ미즈─오차노미즈─』
그것은 마치, 벚꽃과 함께 불어닥친 봄바람처럼.
텐진야마 오토기는 그 열차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문이 닫히고, 열차는 움직인다.
“─오토기?”
처음으로 어른의 눈동자에 동요가 달렸다.
작은 오류일 것으로 생각했다.
오토기라는 학생은 이 정도로 무모하지 않을 거라고.
순간의 충동이라면 되돌아가라며 그가 돌아본 그 찰나.
“저기 말이야, 선생님. 내 상상이지만─그냥 폼을 잡고 싶었던 거지.”
선생이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은 그녀가 생각보다 냉정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편지만 한 장 남겨둔 채 ‘추억’이 된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이상적인 결말이자, 더할 나위 없는 에필로그.
하지만 그건 재미없다며, 이 순간만큼은 불량소녀는 생긋 미소 지어 보인다.
“그렇지만 어떤 무대 뒤의 존재든, 결국은 혼자 남겨지든.
마지막의 마지막 정도는 웃어도 좋다고 생각해.
그 정도는 괜찮잖아.”
‘어느 쪽’의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먼 나라에 가장 위대한 저격수가 있었다.
장렬한 전과 끝에 하얀 사신이라 불리던 그는 전장에서 사라져 전설이 되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임무를 완수하고, 그에게는 분명히 ‘그 이후’가 있었다.
어두운 이야기의 종막에서 남자는 살아남아 환영받았다─
요컨대, 대충 말하자면 그것과 같은 것.
“그러니까, 나를 다시 ‘되돌려 보내줘.’
─그리고 겸사겸사 다시, 제대로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고.
아직 졸업한 건 아니잖아?”
“하지만, 그건─”
─선생님이잖아, 학생은 제대로 바래다줘야지!
이 정도의 떼쓰기야말로 그녀가 도출해 낸 해답이었다.
이상적인 어른도, SRT에서의 생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소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그마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렇게 내딛는 한 걸음 정도는 분명 괜찮을 터.
“…그래. 조금 힘들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치? 계속 머무를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조금 정도라면─”
어느새 열차는 멈추었고, 소녀의 헤일로는 사라져 있었다.
소부선, 아키하바라역.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발걸음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이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청춘 이야기의 종막, 언젠가 찾아올 에필로그─
‘그곳’과는 닮은 듯 다른 풍경 속으로 조금 특별한 두 사람이 녹아들어 간다.
─마음이 진정되면 돌아갈 차표를 사러 가자.
대단한 기적 같은 건 바라지 않아.
그저 다시 한번,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댓글 3


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