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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 #L #드라마 #유우카

원본 by シャコはカニ味

=========================

<1> ~ <4>

<1>

0엔.

몇 번을 다시 계산해도 답은 같았다.

계산기의 ‘AC’ 버튼을 누르고, 다시 처음부터 숫자를 입력한다.

3, 8, 0.

더하기, 1, 2, 8, 0.

더하기, 4, 9, 0.

더하기…….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정적만이 감도는 세미나실에 내가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계산이 틀렸을 리는 없다.

애초에 첫 번째 계산조차 암산으로 충분히 나올 수준이었다.

계산기를 쓰는 건 계산 결과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그저 어떠한 계기로 답이 바뀌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숫자는 나의 이런 감정 따위는 고려해 주지 않는다.

0.

선생님이 지난 한 달 동안,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 금액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평소와 다름없는 가계부 점검이었다.

그 사람─샬레의 선생님은 돈 관리가 정말이지 엉망이다.

영수증을 지갑 속에 넣어두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걸 지갑 안에서 숙성시킨다.

영수증이라는 건 지갑에 넣고 일정 기간 묵혀둔다고 해서 와인처럼 가치가 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인쇄가 흐릿해져서 뭘 샀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될 뿐이다.

이전에는 선생님의 지갑에서 거의 백지나 다름없는 영수증이 나온 적도 있었다.

“선생님. 이건 뭘 샀을 때 영수증이죠?”

“음…글쎄?”

“날짜는 지난달 17일이에요. 금액은 간신히 1,280엔이라고 읽히네요.”

“아아, 그거라면 아마 밥값일 거야.”

“누구랑 어디서 뭘 드셨는데요?”

“한 달 전 점심 메뉴를 그렇게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경비로 신청하실 거면 기억해 두시라고요!!”

이런 대화를 몇 번이나 주고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가 정기적으로 샬레를 방문해 선생님의 지갑과 가방, 책상 서랍에서 영수증을 수거하고 있다.

이건 딱히 선생님의 지갑을 마음대로 보고 싶다거나, 선생님이 평소에 어디서 뭘 사는지 알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세미나의 회계로서.

샬레의 건전한 회계 관리를 위해.

선생님이 부정한 경비 신청을 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겸사겸사, 선생님이 다른 학생과 단둘이 식사하러 간 흔적은 없는지 아주 조금 주의 깊게 확인하기 위해.

아니, 마지막 건 아니다.

방금 건 잊어줬으면 좋겠다.

평소처럼 선생님에게서 한 달 치 영수증을 수거해 분류하고 있었다.

업무상 이동비.

샬레 비품비.

학생과의 식사비.

병문안 선물.

간식비.

파손된 물품 대납비.

그리고 용도 불명의 잡비.

분류 작업을 하던 도중,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님의 식비가 이상할 정도로 적다.

식비로 제출된 영수증은 한 달간 총 14장.

합계 7,460엔.

단순히 30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약 248.67엔이 된다.

물론 식사 전부를 경비로 신청하는 건 아닐 것이다.

선생님에게도 개인 돈이 있고, 사적인 식사까지 샬레에 청구할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지갑에 들어있던 영수증을 거의 빠짐없이 수거했다.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 산 영수증까지 남아 있었다.

그런 사람이 식사 영수증만 깔끔하게 버렸을 리가 없다.

의아한 마음에 14장의 내용을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라멘, 980엔.

이건 귀가가 곤란해진 학생과 함께 먹은 것.

패밀리 레스토랑, 1,640엔.

심야까지 상담을 해주던 학생에게 밥을 먹인 것.

선생님은 드링크 바만 이용했다.

쿠페빵, 380엔.

두 개를 사서 하나는 학생에게. 남은 하나가 선생님의 점심.

카페, 1,280엔.

학생 두 명분의 케이크 세트. 선생님은 물만 마셨다.

편의점, 490엔.

주먹밥 두 개와 차. 몸 상태가 안 좋은 학생에게 건네준 것.

규동, 720엔.

배가 고파서 움직이지 못하던 학생에게 곱빼기를 먹인 것.

나머지도 전부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와 함께 먹었거나.

누군가에게 먹였거나.

누군가에게 건네주었거나.

선생님 혼자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구매한 식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식비뿐만이 아니었다.

잡화점, 2,640엔.

비닐우산 세 개 구매. 갑작스러운 비에 곤란해하던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약국, 1,380엔.

두통약, 소화제, 반창고. 전부 샬레를 방문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

서점, 1,760엔.

학생이 상담했던 자격시험 참고서.

과자점, 2,250엔.

업무를 도와준 학생들을 위한 간식.

소품점, 980엔.

귀여운 파란색 키홀더.

용도 불명.

이 980엔만큼은 누구를 위해 산 물건인지 알 수 없었다.

파란색.

작고 동그란 고양이 키홀더.

나는 선생님이 그걸 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선생님이 직접 쓰려고 귀여운 고양이 키홀더를 골랐을까?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0은 아니다.

사실 선생님에게는 귀여운 걸 좋아하는 취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가방 안쪽에 몰래 달아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 자신을 위한 지출을 드디어 하나 찾아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생님의 새로운 일면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 나도 비슷한 걸─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지만 그 기대는 같은 날 모모톡 기록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사라졌다.

『선생님! 오늘 제 가방에 달려있던 고양이가 떨어져 버렸어요…….』

『그거 엄마한테 받은 소중한 건데…….』

어느 학생이 보낸 메시지.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선생님은 파란 고양이 키홀더를 구매했다.

아마 잃어버린 물건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려고 비슷한 물건을 찾아 헤매다 샀을 게 뻔하다.

나는 980엔을 ‘선생님 개인’에서 ‘학생 관련’으로 옮겼다.

이것으로 모든 분류가 끝났다.

선생님이 한 달 동안 지출한 금액.

합계, 86,730엔.

그중 선생님 자신만을 위해 지출한 금액.

0.

나는 다시 한번 계산기의 ‘AC’를 눌렀다.

그리고 계산할 필요도 없는 계산을 시작했다.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0 더하기 0은 0.

0에 무엇을 곱해도 0.

0을 제곱해도, 세제곱해도 0.

선생님이 몇 명의 학생을 구해도.

선생님이 몇 시간을 일해도.

선생님이 아무리 지쳐도.

이 가계부 안에서 선생님 자신에게 할당된 금액은 줄곧 0이었다.

“…뭐야, 이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세미나실에는 나밖에 없다.

그래서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것도 아니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뭐냐고, 이게…….”

<2>

“선생님. 이번 달 가계부에서 중대한 부정행위를 발견했습니다.”

다음 날. 나는 샬레 집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인사보다 먼저 그렇게 선언했다.

선생님은 책상에 앉아 편의점에서 파는 팩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침 식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아, 유우카.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도 빠르네.”

“선생님. 중대한 부정행위를 발견했다고요.”

“두 번 말했네.”

“중요한 일이니까요.”

“저기…내가 뭐 잘못했어?”

“하셨어요.”

선생님의 얼굴이 눈에 띄게 파래졌다. 익숙한 얼굴이다.

선생님은 책상 서랍으로 슬그머니 손을 뻗는다.

“움직이지 마세요.”

“앗, 네.”

“지금 뭘 숨기려고 하셨죠?”

“아, 아무것도…….”

“그럼 서랍 열어보세요.”

“이건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는데─”

“여세요.”

“네…….”

선생님이 조심조심 서랍을 연다.

안에는 다 먹은 컵라면 용기가 들어있었다.

“…선생님.”

“기다려봐. 이건 오해야.”

“뭐가 오해라는 거죠?”

“어제 먹은 게 아니야.”

“그럼 언제 건데요?”

“…사흘 전.”

“그게 더 나빠요!! 당장 버리세요!!”

나는 컵라면 용기를 낚아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아니다.

하마터면 평소 흐름대로 흘러갈 뻔했다.

오늘 내가 문제 삼으려는 건 컵라면 용기를 사흘 동안 서랍에서 숙성시킨 일이 아니다.

아니, 그것도 중대한 문제이긴 하지만.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나는 가져온 서류를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번 달 지출을 용도별로 분류했습니다.”

“고마워. 늘 도움받고 있어.”

“선생님 개인을 위해 사용한 지출이 어느 거라고 생각하세요?”

“나 개인?”

“네. 선생님이 선생님 자신만을 위해 산 물건 말이에요.”

선생님은 서류를 집어 들고 훑어본다.

“이 커피라든가?”

“그건 어제 밤샘하던 학생에게 준 거예요. 선생님은 한 모금도 안 마셨잖아요.”

“저기, 그럼 영수증에 있는 이 우산.”

“세 개 다 학생들에게 나눠주셨죠?”

“참고서는…….”

“학생 부탁으로 사신 거고요.”

“약.”

“샬레 구급상자에 채워 넣은 거잖아요.”

“고양이 키홀더.”

“물건 잃어버린 학생한테 주셨죠?”

“어, 거기까지 조사한 거야?”

선생님이 살짝 깨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런 표정을 보고 싶어서 조사한 게 아니란 말이야.

“선생님.”

“응.”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나는 종이 맨 아랫부분을 가리켰다.

“선생님 자신을 위해 사용한 지출은 어느 거죠?”

선생님은 한참 동안 서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더니 조금 곤란한 듯 웃었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곧 나를 위한 거라고나 할까…….”

“선생님?”

“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선생님 자신을 위해 사용한 지출은 어느 거냐고요?”

“…없네.”

“네.”

“대단한걸. 이번 달은 낭비를 하나도 안 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어제부터 쌓여온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낭비가 너무 없어서 문제인 거라고요!!!”

책상을 양손으로 내리쳤다.

쾅!! 하고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선생님이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우왓!”

“지출이 많은 걸 화내는 게 아니에요!!”

“어? 아, 응. 그런 거야?”

“선생님을 위한 지출이 단 1엔도 없다는 사실에 화를 내는 거라고요!!”

“하, 하지만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식사는요!?”

“머, 먹고 있어.”

“뭘 드셨는데요!?”

“그게, 어제는 컵라면을…….”

“사흘 전 용기였잖아요!!”

“어라?”

“어라? 가 아니에요!!”

나는 선생님 책상을 가리켰다.

“오늘 아침 식사는요!?”

“커피.”

“그건 음료예요!”

“우유가 들어있어.”

“유제품으로 분류한다고 해서 식사가 되는 건 아니라고요!!”

팩 커피의 영양 성분 표시를 확인한다. 내용량 200ml. 열량 92kcal.

“사람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에너지는 연령이나 활동량에 따라 다르지만 성인 기준 대략 2,000kcal 전후예요!

이 커피만으로는 선생님을 21.7명은 모아야 겨우 한 사람분이라고요!!”

“그 광경, 좀 무서운데.”

“농담하지 마세요!!”

나는 손에 든 서류를 팔랑팔랑 넘겼다.

“어제 점심은요!?”

“쿠페빵.”

“두 개 사서 하나는 학생 줬잖아요.”

“하나는 먹었어.”

“저녁은요!?”

“상담하던 아이랑 패밀리 레스토랑에…….”

“선생님은 드링크 바만 마셨잖아요!”

“콜라 세 잔 마셨어.”

“액체로 하루를 끝내려고 하지 마세요!!”

내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선생님이 반박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째서.

어째서 이 사람은.

이렇게나 많은 학생을 소중히 여기면서, 왜 자기 자신만큼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대하는 걸까.

“선생님은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뭐냐니…선생?”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에요.”

“어른?”

“더 나빠요.”

나는 선생님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이 왜 혼나고 있는지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자신이 조금 참으면 된다.

자신이 먹지 않아도 학생의 배가 부르면 된다.

자신이 젖어도 학생이 우산을 쓸 수 있으면 된다.

자신이 잠들지 않아도 학생이 안심하고 잘 수 있으면 된다.

분명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선생님은 누군가를 도울 때만 자신을 자산으로 계산하는군요.”

“…어?”

“선생님이 가진 시간. 선생님의 체력. 선생님의 돈. 선생님의 마음.”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전부 누군가에게 건네주기 위한 자산으로서는 계산하면서.”

마지막 손가락을 접는다.

“선생님 자신이 사용할 몫은 처음부터 계산에 넣지도 않았어요.”

“에이, 너무 과장이다.”

“과장 아니에요!!”

다시 책상을 내리칠 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 계산해 봤거든요.”

“뭘?”

“…선생님이 쓰러졌을 때의 손실 말이에요.”

어제 한숨도 자지 않고 만든 또 다른 자료를 꺼냈다.

“선생님이 일주일 동안 움직이지 못할 경우, 연기되는 샬레의 업무는 평균 202건.”

“그렇게나 많아?”

“학생들과의 상담 예정이 72건. 각 학원과의 조정 업무가 8건. 서류 승인이 122건.”

“새삼스럽게 엄청난 양이네.”

“아니, 정말로요.”

“내가 쓰러지면 그만큼 업무가 밀린다는 거네……. 그건 곤란하겠어.”

“곤란하다는 말로 끝내지 마세요.”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대체 인력 확보. 일정 재조정. 긴급 사안에 대한 대응 지연. 이것들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나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사실 여기까진 계산할 수 있다.

선생님이 일주일 쉬었을 때 샬레 업무에 얼마나 큰 손실이 발생하는지.

각 학원에 어떤 영향이 가는지.

숫자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전부 계산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쓰러졌을 때 내가 느낄 감정은.

선생님이 사라졌을 때 내가 잃게 될 것은.

어떤 단위로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제 개인적인 손실액은.”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을 고르려 애썼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직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유우카.”

“선생님과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되는 시간.”

안 돼.

지금은 회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을 혼낼 수 없게 되는 시간.”

이건 업무상의 문제인데.

“선생님이 썰렁한 농담을 하고, 거기에 제가 화를 내고, 선생님이 웃고.”

사적인 감정을 섞어서는 안 되는데.

“그런 시간이 전부 사라졌을 때의 손실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는 계산할 수 없어요.”

분하다.

계산이 특기라는 게 내 유일한 장점인데.

선생님에 관한 일은 언제나 계산이 서지 않는다.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선생님, 흐윽.”

내가 몇 번이나 더 샬레에 와야 선생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선생님, 자신을.”

나의 이 마음이 얼마나 더 커져야 억누를 수 없게 될지.

무엇 하나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삭감 대상으로 삼지 마세요…….”

나는 쥐어짜듯 말했다.

잠시 침묵이 샬레 집무실을 지배했다.

“…유우카.”

“선생님, 선생님이.”

호소하듯 말한다.

지극히 논리적이고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일을 눈앞의 어른에게 묻는다.

“자신의 식사를 줄여서 학생에게 먹이면 그 학생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선생님이 자신의 잠을 줄여가며 상담해 주면 상담받은 학생이 좋아할 것 같냐고요?”

“……”

“적어도 저는 싫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의 얼굴이 조금 흐릿하게 보인다.

“선생님이 남을 위해 무언가를 깎아낼 때마다 학생들은 그 깎여나간 몫까지 짊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의도가 없어도 그렇게 된다고요!”

한번 쏟아져 나온 말은 이제 멈춰주지 않았다.

“내가 업무를 도와달라고 한 탓에 선생님이 저녁을 못 드셨다.

내 상담을 들어준 탓에 선생님이 잠을 못 잤다.

나한테 우산을 빌려준 탓에 선생님이 비에 젖었다.

그런 사실을 알면 기쁠 리가 없잖아요!”

눈물 한 방울이 자료 위로 떨어졌다.

숫자가 인쇄된 종이에 작고 동그란 얼룩이 생긴다.

“저는 선생님께 소중히 여겨지기 위해 선생님을 소모시키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에요.”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내가 이 정도로 화를 내면 곤란한 듯 웃었을 것이다.

미안 미안, 하고 가벼운 말투로 사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부터 조심할게, 라고 말하고는.

사흘 뒤면 또 똑같은 짓을 반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웃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가 가져온 가계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자신을 위해 사용한 금액.

0엔.

그 숫자를 한참 동안 바라본 뒤.

“…미안해.”

선생님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들었던 사과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였다.

“이건 유우카에게 사과해야겠네.”

“저한테만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응.”

“선생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학생에게 사과해야 한다고요.”

“응.”

“다음부터 조심하겠다는 말로는 안 돼요.”

“응.”

“구체적인 개선책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평소의 유우카로 돌아왔네.”

“안 돌아왔거든요!!”

나는 눈물을 닦았다.

여전히 눈앞은 번져 보이지만.

여기서부터는 회계의 영역이다.

나는 가방에서 세 번째 자료를 꺼냈다.

“새로운 항목을 만들겠습니다.”

“항목?”

표지에는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 유지비』

“…저기, 나를 무슨 설비처럼 부르지 말아 줄래?”

“자신을 망가질 듯이 다루려는 사람에게는 그 정도가 딱 적당해요.”

“조금 더, 그, 멋있는 이름은 없어?”

“선생님 보존비.”

“건물 같아.”

“선생님 수선 적립금.”

“아파트야?”

“선생님 생존 예산.”

“불길한데.”

“그럼 선생님 유지비로 결정입니다.”

“다수결은?”

“찬성 한 명, 반대 한 명이지만 회계 권한으로 가결합니다.”

“독재다.”

선생님은 곤란한 듯 웃었다.

조금은 평소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자료를 펼쳤다.

“매달 일정 금액을 선생님 개인을 위해 확보하겠습니다.”

“하지만 샬레 예산을 나 개인에게 쓰는 건─”

“선생님의 개인 자산에서 뺄 거예요.”

“내 돈!?”

“당연하죠!”

“마음대로 예산을 짜지 마!”

“선생님은 스스로 예산을 짤 능력이 없으시니까 제가 대행하는 겁니다!”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우선 식비. 최소 하루 세 끼.

업무 중에 학생과 식사할 때도 선생님 몫을 반드시 주문할 것.”

“배가 안 고프면?”

“그런 특수한 상황을 끌어들여서 원칙을 부정하려고 하지 마세요.”

“네.”

“다음으로 한 달에 두 번 이상, 선생님이 직접 먹고 싶다고 생각한 음식을 먹을 것.”

“쿠페빵.”

“기각.”

“좋아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대충 때우는 쿠페빵이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서 먹으러 가고 싶은 음식이어야 해요.”

“음…라멘이라든가?”

“채택하겠습니다.”

“채택되는구나.”

“그리고 업무와 무관한 물건을 최소 하나는 구매할 것.”

“어렵네.”

“안 어려워요! 갖고 싶은 걸 사면 된다니까요!”

“갖고 싶은 거……”

선생님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턱을 괴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10초.

20초.

30초.

“아직인가요?”

“재촉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안 나와.”

“좋은 아이디어를 내라는 게 아니잖아요.”

1분이 지났다.

선생님의 입에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조금 무서워졌다.

혹시 이 사람은 정말로 자신이 갖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게 아닐까.

누군가에게 필요한 물건이라면 금방 떠올린다.

학생에게 줄 물건이라면 망설임 없이 고른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묻는 순간, 아무것도 나오지 않게 된다.

“…예전에는.”

그래, 내가 선생님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이 선생님이라는 어른은 마치 돈을 처음 갖기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피규어나 게임 과금에 돈을 펑펑 써댔다.

그걸 내가 나무라며 가계부를 쓰게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갑자기 절약에 눈을 뜬 걸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훨씬 가능성 높은, 아니 확실하다고 해도 좋을 이유가 그곳에 있다.

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게 된 것은 어느 시점을 경계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선생님이 강철 대륙에서 귀환한 날…….

그때부터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보고서를 읽어서 알고 있다.

그 후에 선생님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며 정보 이외의 감정적인 부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짐작할 수 있다.

선생님은 키보토스에 왔을 때부터 자신보다 학생을 먼저 생각하며 움직였다.

그것은 관련된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선생님 자신의 시간뿐만 아니라 돈까지 전부 학생을 위해 쏟아붓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며, 함께한 시간은 길지언정 이 사람의 사고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강철대륙에서 있었던 일이 선생님을 바꿔 놓은 모양이다.

“…그럼 오늘 사러 가죠.”

“어, 지금?”

“지금 당장이요.”

”그게, 업무가 좀…….”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은 제가 오기 전에 다 확인했습니다. 긴급한 건 없어요.”

”벌써 확인했구나.”

“이렇게 될 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요.”

“유우카는 정말 대단하네.”

“칭찬해도 뭐 나오는 거 없어요.”

“진심인데.”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내가 얼마나 두근거리는지도 모르면서.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선생님. 준비하세요.”

“어디 가는데?”

“선생님이 갖고 싶은 걸 찾으러 갈 거예요.”

“못 찾으면?”

“찾을 때까지 안 돌아올 겁니다.”

“오늘 안에?”

“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돈을 쓸 때까지요.”

선생님은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어딘가 기쁜 듯이 웃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좀 걸려도 괜찮겠네.”

“안 됩니다. 신속하게 찾을 거예요.”

“그 뜻이 아니라.”

“뭐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집어 들었다.

<3>

선생님의 쇼핑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난항을 겪었다.

첫 번째 가게.

의류 매장.

“선생님, 이 셔츠는 어때요?”

“좋네. 일할 때 입어도 되겠어.”

“업무용이니까 기각입니다.”

“어?”

두 번째 가게.

문구점.

“이 만년필, 멋진데.”

“일할 때 쓰실 거죠?”

”당연하지.”

“기각입니다.”

“너무 엄격한 거 아냐?”

세 번째 가게.

가전 양판점.

“새 보조 배터리가 갖고 싶었거든.”

“샬레 비품으로 필요하신 거니까 별도 예산으로 구매하겠습니다.”

“내가 갖고 싶은 건데.”

“개인적인 욕구가 아니잖아요.”

네 번째 가게.

생활 잡화점.

“이 쿠션은 어떠세요?”

“낮잠 자는 학생들용으로 좋겠는데.”

“선생님용이라고요!”

“나 혼자 쓰기엔 좀 아깝지 않아?”

“기각!!”

다섯 번째 가게.

장난감 가게.

“이거, 코유키한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지금은 선생님 물건을 고르는 중이라니까요!!”

여섯 번째 가게.

과자점.

“아, 이 쿠키 유우카가 좋아할 것 같아.”

“제 물건 고르지 마세요!!”

“하지만 좋아하잖아?”

“좋아하긴 하지만요!!”

정신을 차려보니 쇼핑을 시작한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선생님은 단 하나도 자신을 위한 물건을 고르지 못했다.

게다가 마지막 과자점에서는 내가 좋아할 법한 쿠키를 사려고까지 했다.

“유우카한테 선물해도 내가 산 거니까 내 물건이 되는 거 아냐?”

“안 됩니다!!”

”일단 최초 소유권은 나한테 있지 않아?”

“사용 목적이 저에 대한 증여니까 학생 관련비입니다!”

“회계란 참 엄격하네.”

“선생님이 자꾸 편법을 찾으려 하니까 그렇죠!”

우리는 쇼핑몰 안의 벤치에 앉았다.

선생님은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반면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럴 거면 복잡한 결산서 100장을 검토하는 게 훨씬 편할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왜 그래?”

“정말로 아무것도 갖고 싶은 게 없으세요?”

“음—”

눈앞에 있는 사람은 이전에 내가 알던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 카이텐저 어쩌구 하는 6자리 금액의 로봇 피규어를 사거나, 수상쩍은 이름의 앱에 과금을 하던 선생님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커다란 사건은 사람을 바꾼다.

이치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어른인 선생님조차 바꿔 버리는 것인가.

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건 밀레니엄의 모토라고도 할 수 있다.

정체가 아닌 변화. 전통보다는 진화.

그렇게 과학은 진보해 왔다.

하지만 변한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닐 것이다.

낭비는 나쁜 일이다,

수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낭비가 제로가 된다면, 그건 그저 기괴할 뿐이다.

인간이라면 무의미한 소비를 하기 마련이다.

학원의 회계를 맡고 있는 내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모두들 이상한 곳에 돈을 쓴다.

대부분은 낭비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낭비 속에 인간미가, 청춘이 담겨 있다는 느낌이 요즘 들어 든다.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아 편의점에서 샀던 핫스낵은 건강 면에서 보면 완전히 꽝이고 돈 낭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걸 선생님께 들켜서 함께 밤길을 걸었던 기억은 따스해서, 가끔 떠올릴 때마다 혼자 웃음 짓게 되는 원인이 되곤 한다.

무의미함을 극한까지 깎아낸 선생님은 회계로서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선생님에게서는 추억도, 따스함도, 인간미도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닐까.

“부담 갖지 마세요, 선생님. 비싼 물건이라도 바로 기각하진 않을 테니까요.”

“바로 기각하진 않겠다니.”

“필요성과 선생님의 수지 상황을 확인하고 판단하겠습니다.”

“결국 기각될 가능성은 있다는 거네.”

“그건 당연하죠.”

선생님은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가족 일행.

친구 사이.

쇼핑백을 든 학생들.

선생님의 시선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쪽을 향했다.

길을 잃은 아이는 없는지.

곤란해하는 학생은 없는지.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은 없는지.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인간이다. 기계가 아니다.

“응?”

“지금은 다른 사람 보지 마세요.”

자신을 억누르고 학생에게 멸사봉공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줘요.

“어?”

“곤란한 사람이 보이면 바로 도와주러 가려고 하시죠?”

학생이 될 수도 있었던 아이들 세 명이 죽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신은 앞으로도 자신을 깎아 먹으며 살아가겠죠.

“그건, 뭐.”

“지금만큼은 선생님의 시간이에요.”

하지만 나는, 우리들은.

당신이 당신으로 남아주길 바라요.

“나의 시간.”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마세요.”

나는 선생님의 소매를 붙잡았다.

도망치지 못하게.

누군가를 돕기 위해 또다시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게.

“선생님 자신만 생각하세요.”

“…어려운 주문이네.”

“그런 거, 보통은 어렵지 않아요.”

“유우카는— 유우카는 자기 자신만 생각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요.”

즉답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고 조금 짓궂게 웃었다.

“지금도?”

“지금요?”

”지금의 유우카는 내 생각밖에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으엑!?”

나도 모르게 선생님의 소매를 놓았다.

아니다.

선생님의 회계 관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선생님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샬레의 업무를 지속하기 위해.

각 학원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그, 그건 선생님이 문제투성이라서 그렇잖아요!”

“그렇네.”

“선생님이 평범하게 자신을 아낄 줄 안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안 해요!”

“응.”

“선생님 생각 같은 거, 안 해도 된다고요!”

“그건 좀 서운한데.”

“…윽!”

또다시.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계산을 흐트러뜨린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선생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어, 어쨌든. 갖고 싶은 걸 생각하세요.”

“생각하고 있어.”

“뭐 없나요? 취미라든가.”

“업무.”

“기각.”

”학생들 상담해 주는 거.”

“기각!”

”유우카랑 가계부 보는 거.”

“기각……,”

반사적으로 기각하고 나서.

방금 한 말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재생했다.

유우카랑 가계부 보는 거.

“…지금 뭐라고 하셨죠?”

“업무.”

“그다음요.”

”학생 상담.”

“그다음!”

“유우카랑 가계부 보는 거.”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건…일이잖아요.”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서.”

“무슨 뜻인가요?”

”처음에는 영수증을 정리해 주니까 고맙다는 마음이었는데.”

선생님은 조금 쑥스러운 듯 뺨을 긁적였다.

“요즘은 ‘유우카가 오는 날이니까 영수증을 책상에 꺼내 둬야지’ 한다든가.”

“네.”

”‘오늘은 어떤 걸로 혼나려나’ 생각한다든가.”

“그건 미리미리 좀 고쳐주세요.”

“‘새로운 가게 영수증을 보면 유우카가 관심을 가질까’ 같은 거.”

“…네.”

“그런 생각을 하게 돼서.”

선생님이 나를 바라본다.

“가계부를 보는 시간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됐어.”

심장이 쿵! 하고 크게 뛰었다.

선생님을 위해 새로운 비용 항목을 만들었다.

선생님 자신의 희망 사항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런데.

겨우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갖고 싶은 것’ 안에.

내가 있다.

“그건…….”

나는 어떻게든 반론을 찾으려 애썼다.

“그건 물건이 아니잖아요.”

“응.”

“구매할 수 없어요.”

“그렇네.”

“예산 용도로 인정 안 됩니다.”

“식사라면?”

“네?”

”유우카랑 같이 밥 먹는 거.”

선생님은 쇼핑몰 안내판을 본다.

”그거라면 예산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쓸 수 있다.

식비로서.

선생님이 직접 먹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먹기 위한 비용.

한 달에 두 번 이상 확보하도록 방금 내가 직접 규칙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제 식사비도 발생하잖아요.”

“내가 낼게.”

“그건 저에 대한 지출이 된다고요!”

“그럼 각자 내기.”

“선생님 유지비로는 선생님 몫만 계상하겠습니다.”

“응.”

“제 몫은 제가 알아서 낼 거예요.”

“응.”

“…어디 가고 싶으신데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쇼핑몰 밖을 가리켰다.

“저기.”

손가락 끝에는 조금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식당이 있었다.

가게 앞 입간판에 커다란 오믈렛 사진이 걸려 있다.

“오믈렛인가요?”

“전부터 궁금했거든.”

“그럼 거기로 하죠.”

“괜찮아?”

“선생님이 드시고 싶은 거니까요.”

“유우카도 같이?”

“…예산이 적절하게 쓰이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회계 감사구나.”

“불만 있으세요?”

“설마.”

선생님은 웃었다.

“그게 지금 제일 갖고 싶었던 거니까.”

또다시 심장이 뛴다.

이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이런 말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단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알아보고,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리는데.

선생님은 항상 내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나의 방어력이 가장 낮을 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가요.”

“응.”

“그리고.”

”응?”

“오늘로 끝이 아닙니다.”

“선생님 유지비?”

“매달 할 거예요.”

“매달 유우카랑 밥을 먹는 건가?”

“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돈을 쓸 줄 알게 될 때까지요!”

”그럼 가급적 알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 볼까.”

“알게 되시라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식당으로 향했다.

선생님도 그 옆에서 걷기 시작한다.

도중에 선생님이 조금 앞서 나갔다.

나는 선생님의 소매를 다시 한번 붙잡았다.

“유우카?”

“…곤란한 사람을 발견해도 지금은 안 돼요.”

“알고 있어.”

“지금은 선생님의 시간이에요.”

“응.”

“선생님이 선생님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이라고요.”

“응.”

선생님이 걷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나와 같은 속도가 된다.

“하지만 절반은 유우카의 시간이기도 하네.”

“…그렇네요.”

“그렇다면 좀 더 길어도 될까?”

“예약 상황에 따라 달라요.”

“다음 달은?”

“아직 일정 확인 안 했습니다.”

“다다음 달.”

“앞서서 일정 마음대로 잡지 마세요.”

“1년 뒤.”

“선생님!”

“10년 뒤.”

“그렇게 먼 미래를 지금 어떻게 정해요!”

“싫어?”

선생님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치사하다.

그런 식으로 물어보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일정은.”

나는 선생님의 소매를 붙잡은 손에 힘을 조금 주었다.

“미리 신청하세요.”

“며칠 전까지?”

“가급적 한 달 전에는요.”

“그럼 매달 신청할게.”

“매달요!?”

“내 유지비라며.”

선생님이 즐거운 듯 웃는다.

“장기 계약이 되겠네.”

나는 선생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쇼핑몰 유리창에 붉게 달아오른 내 얼굴이 비친다.

사실은.

선생님이 자신을 아낄 수 있게 되어도.

선생님이 혼자서 제대로 식사를 하고.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을 사고.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쉴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이 항목을 폐지하고 싶지 않다.

선생님의 가계부에.

선생님의 스케줄표에.

선생님의 앞으로의 시간 속에.

나를 위한 항목을 계속 남겨두고 싶다.

“…바라던 바예요.”

<4>

다음 날.

나는 어제의 지출을 가계부에 입력하고 있었다.

양식당.

오믈렛, 1380엔.

선생님의 몫만 선생님 유지비로 계상한다.

내가 먹은 햄버그 세트는 내가 직접 냈다.

선생님은 끝까지 내주겠다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번 목적은 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었으니까.

선생님이 나를 위해 돈을 써버리면 의미가 없다.

용도란에 글자를 입력한다.

『본인 희망에 의한 식사』

거기서 손을 멈췄다.

잠시 생각하다 지운다.

『건강 유지를 위한 식사』

이것도 아니다.

건강을 위해 먹은 게 아니다.

아니, 그것도 목적 중 하나이긴 했지만.

선생님은 오믈렛을 먹으며 정말 기뻐 보였다.

한 입 먹을 때마다 “맛있다”라고 말했다.

내가 시킨 햄버그를 보고 “그것도 맛있겠네”라고 하기에 한 조각 나눠 드렸다.

그 대신 선생님의 오믈렛도 한 입 얻어먹었다.

선생님이 쓰던 숟가락과는 다른 숟가락으로.

물론이다.

당연한 거다.

거긴 중요한 부분이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돌아오는 길에 “다음 달엔 뭘 먹을까”라고 물었다.

나는 이번 달의 첫 번째일 뿐이니 이번 달 안에 한 번 더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아주 기쁜 표정으로 다음 가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번 용도란을 보았다.

그리고 입력했다.

『선생님이 내일도 선생님으로 있기 위한 필요경비』

내 생각에도 조금 거창한 기재일지도 모르겠다.

이걸 정식 가계부에 남기는 건 부적절할까.

좀 더 간결하고 객관적인 표현으로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삭제 키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다 손가락을 뗐다.

그대로 저장 버튼을 누른다.

이걸로 됐다.

이건 낭비가 아니다.

선생님이 식사를 하는 것.

선생님이 갖고 싶은 걸 사는 것.

선생님이 쉬는 것.

선생님이 웃는 것.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필요한 지출이니까.

덧붙여서.

선생님 유지비 규칙에는 훗날 새로운 항목 하나가 추가되었다.

『선생님 유지비를 사용할 때는 원칙적으로 하야세 유우카의 사전 승인을 필요로 한다』

이건 선생님이 다시는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학생을 위해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결코.

선생님이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먹는지.

내가 전부 파악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정말로.

“유우카. 다음 달 신청서 써왔어.”

“너무 빠르잖아요!?”

“한 달 전에는 말하라고 한 건 유우카잖아?”

“그렇긴 하지만……”

“가고 싶은 가게도 정했어.”

“어딘데요?”

“유우카가 전에 가보고 싶다고 했던 팬케이크 가게.”

“제가요?”

“응.”

“선생님을 위한 예산이라니까요?”

“유우카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면 내가 힘이 나거든.”

“그런 편법은 금지예요!!”

“안 돼?”

“안 돼요!”

“그럼 유우카는 안 올 거야?”

“…가긴 하겠지만요.”

”다행이다.”

“단! 선생님 자신이 먹고 싶은 것도 반드시 주문하셔야 해요!”

“유우카가 골라줄래?”

“직접 고르세요!!”

정말이지.

진짜로.

선생님은 조금도 모른다.

자신이 웃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안심하는지.

자신이 ‘다음 달’이라고 말할 때마다.

그 다음 달에도 내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이 사람은 분명 앞으로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깎아내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때마다 계산하고.

그때마다 꾸짖고.

그때마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줄 것이다.

선생님이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리고 그렇게 된 후에도.

선생님의 가계부에서 이 항목을 삭제할 예정은 없다.

『선생님 유지비』.

매달의 예산.

용도는 선생님이 키보토스에서 선생님답게 있을 수 있도록.

기간은 미정.

단.

가능한 한 장기 계약으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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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8.07번역

소설 핫산) 자신을 삭감 대상으로 삼지 마세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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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shaco_kani작가
게시물 11개
고DC
고관위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6.08.07 23:42
조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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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8

나
ㅇDC
ㅇㅇ126.08.07
디시콘
ㅇDC
ㅇㅇ226.08.07
디시콘
ㅇDC
ㅇㅇ326.08.08

역시 정실이야

ㅇDC
ㅇㅇ426.08.08

아주 좋은걸

ㅇDC
ㅇㅇ526.08.08

개추 덕분에 자기 전에 좋은거 읽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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