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길잃은 누군가 (1)
“내 에리두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엄밀히 따지면 에리두는 리오 님 소유가 아니…”
토키가 끼어들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컨트롤 타워가 통째로 날아갔다고!”
컨트롤 타워의 폭발은 리오가 에리두의 권한을 되찾고, 그것을 총학생회에 이관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원격 통제가 가능해진지 몇 초 만에 폭발로 인해 접속이 끊긴 리오는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어머. 리오가 천 년 동안 몸으로 갚아도 모자랄 에리두가 저렇게 허무하게…”
리오는 히마리의 말을 무시했다.
“사람들은, 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무사해?”
“너무 초조해하지 말아요. 리오. 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무사해요.”
“...노아도?”
“네루 씨와 호시노 씨가 구출했답니다. 노아 씨도 정신을 잃긴 했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 같네요. 일단 기절해 버린 이상, 사태가 끝날 때까지 다시 일어나지는 못하겠지만…”
토키가 거기서 끼어들었다.
“현재 아비도스 소속 헬리콥터가 후방으로 후송 중입니다.”
리오 개인의 거대한 상실감을 제외하면 크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문제가 하나 있는데. 에리두의 통제를 잃은 저궤도 위성들이 키보토스에 추락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연소할 테지만… 통제된 추락이 아닌지라, 예외가 몇 개 있어요.”
히마리의 말에 리오가 입술을 깨물었다.
“예상 낙하 위치는?”
“...지금 확인 중인데요. 그게… 어머."
컴퓨터의 계산은 가장 안 좋은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샬레 거주구…”
“뭐?”
그 말에는 리오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기겁을 했다.
"왜 많고 많은 수만 가지 장소 중 하필 거기?"
"그, 그러게요. 굉장한 우연이네요."
"요격은?"
"요격 장비를 운용할 인원이, 지금은..."
이유는 말할 것도 없었다.
리오는 급히 통신을 현장에 있는 하나코에게 돌렸다.
“하나코. 들려?”
“네에. 하나코에요. 무슨 일이죠 리오 씨? 지금 한창 내부를 수색 중인데요.”
“아직 카드를 못 찾았어?”
“그러네요… 아직은 이상한 것들밖에 안 보이네요. 음… 지금 선생님이 침실로 쓰셨던 곳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이게 그… 굉장하네요.”
“어떻길래?”
“...선물 상자가 수백 개는 넘게 쌓여 있어요… 서랍은 편지들로 가득차 있구요.”
"편지?"
"하나 읽어 볼게요."
실례되는 일이었지만, 하나코는 개의치 않고 아무 거나 한 장 집어 통신기에다가 대고 읽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겠지. 달갑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최근 시간을 받아간다는 명목 하에 당신의 업무를 방해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당신 같이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다른 학생들의 사적인 응석까지 너무 받아주다 보면 정말로 끝이 없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필요해. 특히 당신에게 꼬리치는 학생들이라면 더더욱. 이게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선생 당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 걸 꼭 이해해 줬으면…”
“아니, 그런 편지 같은 걸 읽을 시간이 없어!”
“그러게요. 역시 이건 좀 너무 길죠?”
아무리 하나코라도 조금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무튼 이런 편지와 선물로 가득 차 있어요. 선생님은… 무엇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소중하게 간직해 두셨던 것 같아요…”
평소라면 감동적인 일이겠지만 지금 문제는 목표물을 그런 어수선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느냐였다.
“하나코, 카드를 못 찾겠으면 거기서 빨리 나와.”
“네? 하지만 카드를 아직 못 찾았는데…”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 지금 위성이 네 위치를 향해 낙하 중이야!”
위성이 떨어진다는 말에 잠깐 당황한 하나코였지만 그녀는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 말을 빨리 했어야죠! 몇 분 정도나 남았는데요?”
“대략 십 분 정도. 정확히 샬레 거주구 근처를 향하고 있어. 이탈 시간까지 계산하면 지금 당장 거기서 나와야 해!”
“하지만 그럼 카드가…”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권한 대행 나나가미 린입니다. 하나코 씨. 지금은 리오 씨 말이 맞습니다. 빨리 거기서 나오셔야 해요.”
“위성이 낙하하면 여긴 아무 것도 안 남게 되잖아요!”
“다른 작전은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어요. 당신의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린의 말은 원론적으로 맞았지만,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코라고 모를 리 없었다.
쉽게 포기하기 어려워 통신을 계속하면서 주변 방들이라도 하나하나 돌아보던 하나코는 뭔가 좀 이상한 것을 보고 말았다.
“...린 씨, 리오 씨. 문제가 생겼는데요.”
“네?”
“여기 학생이 있어요.”
하나코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탈은 보류합니다.”
어둠침침한 방 안에서 하나의 목각인형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누더기 같은 양복을 입은 그는 무언가의 종이를 쉴새없이 필사하고,
동시에 손에 든 것을 깎아 내면서 무언가 바쁘게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미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음에도, 그는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마네킹과 인형, 나무 조각과 염료, 고서적, 양피지 따위가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 위로 솟구치며 쌓여 있었다.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명백히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아코가 딱히 인기척을 숨기지도 않았음에도 그는 그녀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당신이 바로 마에스트로군요.”
그 말을 하자 마에스트로라고 불린 인형은 비로소 작업을 멈췄다.
“호오. 이건 의외로군. 나를 마에스트로라고 부르다니. 너는 이 외견 아래 감춰진 본질을 볼 수 있는가.”
뒤를 조금 돌아보며 그가 말했다.
“아니요. 선생님의 수기를 읽었을 뿐이에요.”
아코가 고개를 저었다.
“흐음. 선생의 수기 말인가. 그것은 무례한 행위로군.”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옳다. 나 역시 동지가 선생의 소유물인 ‘상자’를 살펴보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으니. 그의 부재가 낳은 작금의 상황이 통제 불가능한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는 충분히 참작할 수 있는 일이겠지.”
마에스트로가 수긍하며 다시 몰두하고 있던 작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어째서 제가 당신 같은 작자를 마주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제가 만나고 싶은 건 당신 같은 달갑지 않은 얼굴이 아니었는데. 저는 분명 샬레에서 그분의 흔적을 찾기 위해…”
“누구의 흔적 말인가?”
“네?”
“누구를 찾고 싶었던 거지?”
“그야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자신 있게 운을 뗀 아코였지만 자신이 누구를 찾고 있었는지 그녀 스스로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원인인 것 같군. 너는 누구를 찾아야 하는 건지 몰랐던 것이다. 네가 흠모해 마지않는 너의 상사, 그 소라사키 히나라는 학생과, 선생 사이에서 말이지. 그 때문에 너는 선생의 꿈을 향해 찾아가는 과정에서 길을 잃었다.”
까드득 까드득. 소리로 미루어 보아 그는 이제 무슨 나무 조각 따위를 깎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여긴 어디죠?”
“명상과 탐구의 영역이지. 네가 여기 흘러 들어온 것은 나 역시 선생의 흔적을 찾고 있었음과 무관하지 않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마에스트로라고 지칭한 목각인형이 삐걱이는 소음을 냈다.
“고성당 지하에서의 활동 이후로 이런 무지와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불유쾌한 일인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군. 선생이라면 이런 것을 두 번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터인데…”
“미안하게 됐네요 그건!”
아코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고요. 샬레 지하에서 기절하듯 잠든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데, 꿈에서 고작 만난 게 히나 위원장님이 아닌 당신 같은 인형이라니...”
“...간단하게 말해 우리가 공통된 관심사를 갖고 있었다고 해 두지. 때문에 우리는 공통된 장소에서 만난 것이다.”
“제가요? 당신 같은 악당과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다고요? 농담도 지나치면 불쾌하기만 할 뿐이라구요.”
팔짱을 낀 아코가 마에스트로의 뒤통수를 째려봤다.
그 말에 작업을 다시 멈춘 마에스트로가 이번엔 의자를 돌려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자 아코는 그의 엉망진창이 된 행색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의자 너머로 봤을 때는 티가 덜 났던 완전히 해지고 불에 탄 양복, 그을린 인형의 표면, 박살나고 쪼개진 관절 부분이 완전히 드러났다.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엉망인 모습이었음에도, 그 자신은 그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잘 들어라. 내가 너의 무례를 참아 주고 있는 것은 네가 선생과의 강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이유 단 하나뿐이다. 실로 그는 자신의 학생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유한 듯하군. 이런 낮은 지성을 일찍이 엄하게 계몽시키지 못하다니.”
“제가 멍청하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직설적인 화법을 선호하진 않지만,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
“흐응.”
이 정도로 솔직한 반응이 돌아오자 오히려 아코는 오히려 화가 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제가요? 선생님과 깊은 유대를 갖고 있어요? 그건 무슨 말장난인가요? 전 히나 위원장님만 찾으면 그만이거든요?”
아코가 자신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데 질려 버린 마에스트로가 대화 방법을 바꿨다.
“너는 선생이 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가?”
“그런…”
기세 등등하던 아코의 말문이 막혔다.
“그런 말까지는 안 했잖아요?”
마에스트로가 인형의 육신으로 한숨 비슷한 소리를 냈다.
“들어라. 너는 사라진 너의 상사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고 믿고 있지.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선생이 제멋대로 사라졌기 때문에 자신의 상사가 실의에 빠졌고, 따라서 자신이 대신 선생을 찾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속여 왔지.”
마에스트로가 뻣뻣한 손가락 끝으로 아코를 가리켰다.
“하지만 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네가 히나라고 부르는 그 학생만큼이나 너 자신도 선생님을 찾고 싶었다는 것을.”
“다, 당신이 저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가요?”
“네가 나를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나는 너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네 주변인만큼이나 너를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가 나일 것이다.”
“뭐…뭐라고요?”
단언하는 태도로 즉답한 마에스트로에게 아코가 당황했다.
“저는 당신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인데요? 그걸 얼굴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에요.”
시큰둥하게 그렇게 말하던 아코는 문득 뭔가 떠올리고 갑자기 몸을 감싸안았다.
“에, 스,스토커? 그런 건가요? 혹시 이 아름다운 육체를 탐내서 절 항상 원거리에서 지켜봤다거나?”
“그런 곧 썩어빠질 육신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다.”
대화가 끝도 없이 새는 것을 억지로 다잡으며 마에스트로가 현기증을 느꼈다.
“내가 너를 항상 주시해 왔던 것은, 선생이 나의 ‘작품’, 나의 미메시스와 대적하는 상황에선 언제나 네가 선생의 지휘 아래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인공 천사와 그 속편을 상대할 때도, 철로 위의 마술사를 상대할 때도, 마침내 유원지의 쌍둥이를 복귀시켜 다시 상대할 때도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속해 있었다. 내가 네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너 스스로가 내 주의를 먼저 끌었기 때문이 아니다.”
냉소적인 목소리로 마에스트로가 말을 계속했다.
“선생이 너를 중히 기용했기 때문이다. 오직 그것뿐이다.”
“그..그랬다고요? 제가요? 아, 아니, 제가 그걸 다 상대했다니 무슨 말…?”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아코가 말했다.
“그런 기억이…있었…던가?”
“네가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라도 상관없다. 어쩌면 이것은 네게 속한 시점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으니. 허나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지. 중요한 것은 내가 선생을 흠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에..."
"나는 그를 나의 가장 강한 이해자가 되어줄 사람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그의 부재 역시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저기, 슬슬 답답한데요. 돌려 말하지만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확실하게 하는 게 어떤가요?”
아코가 마에스트로의 뒤통수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그것보다 의외네요. 당신 같은 악당도 선생님의 훌륭한 부분을 알아보시나 봐요? ”
마에스트로가 선생님의 칭찬을 하자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 아코가 괜시리 우쭐댔다.
그러다가 자기가 선생님의 칭찬을 기껍게 받아들였다는 걸 깨닫고 다시 황급히 한 마디 덧붙였다.
“뭐, 그, 가,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져선 히나 위원장님이 눈물짓게 만드는 세계 최악의 못난 사람이기도 하지만요!”
그러나 아코의 호들갑은 아랑곳않고 마에스트로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오로지 그 때문에 네게 대가 없이 작은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사상과 그 영혼의 품격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말이지. 그래. 네가 그의 유지를 잇는 것을 내가 도울 수 있다.”
“자, 잠깐만요! 유지라니, 불길한 소리 하지 말아 주실래요? 그분은 그냥 사라진 거지, 그, 그런 그게, 그게 아니라고 할까!”
“실례했군.”
마에스트로가 솔직하게 자신의 실언을 사과했다.
“지금 같은 때에 적절한 단어의 선택이 아니었다.”
“아, 알면 됐지만요.”
상대의 뜻밖의 태도를 보이자 아코는 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의외인걸요. 선생님은… 당신을 숙적이자 키보토스에 혼란을 가져오는 존재라고 했었는데, 어째서 저를 도와 주겠다는 건가요? 아닌 말로 당신은 선생님의 행방만 찾으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은 게 아닌지?”
“그것은 그의 존재와 이 키보토스, 즉 너희들의 존재가 이미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불가분…?”
마에스트로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인형의 얼굴인 그에게는 표정이라고 할 게 있을 리가 없음에도,
아코는 틀림없이 그가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키보토스는 거대한 기호의 연구실과 같다. 존재 하나하나가 상징, 즉 메타포로 자리잡은 사고실험의 장소이다. 그러나 모든 정신이 잠들어 버린 키보토스는… 더 이상 탐구할 가치가 없겠지. 듣는 자와 들은 대로 행하는 자가 없다면, 선구자의 존재는 무의미할 뿐이다. 이곳이 그렇게 되는 것은 내게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지.”
“말인즉슨… 당신은 선생님과 우리가 있는 키보토스를 원한다는 거군요. 빈 껍데기가 아니라.”
“그래.”
“어째서죠?”
“말할 것도 없이 영혼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연구, 즉 미지에 대한 탐구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살아 맥동하고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세계이지, 죽은 세계에 탐구할 가치 같은 건 없다. 너희들이 찾는 ‘선생’은 어떤 존재지? 그 ‘선생’이라는 단어가 갖는 권위만이, 혹은 그 육신의 껍데기가 중요한가? 아니면 그 ‘선생’이라는 존재 내면의 지성과 품격, 예의와 신념, 경험과 지혜, 그리고 그것을 전한다는 개념이 중요한 것인가? 말할 것도 없겠지. 너 스스로도 답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선생…님의 본질…말인가요.”
아코가 되뇌었다.
“그렇다면 알려 주세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이 일의 본질은 뭔가요? 히나 위원장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아코는 이 수면 현상과 위원장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게헨나에서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 중에 하나였다.
히나를 찾기 위해 보냈던 게헨나의 선도부원들이 블랙 마켓 주변에서 모두 잠들어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존경해 마지않는 상관의 평판을 떨어뜨릴 그런 정보를 떠벌리고 다닐 사람이 아니었다.
'그땐 그게 이렇게 커다란 규모로 번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아코는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는 두려움과 히나가 키보토스 전체를 재울 만큼 강력하다는, 미묘한 자랑스러움 사이에서 복잡한 기분이었다.
“...신비의 반전이지. 네가 이미 목격해 잘 알고 있는 현상이다. 너희 학생들과 선생이 방주를 공략할 때 목격한, 바로 그 현상이다.”
“뭐…라고요?”
충격을 받은 아코가 바로 멍해졌다.
“그럼… 그런… 어째서? 히나 위원장님은 색채 같은 것과 접촉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로 절망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키는지 잊을 리가 없었다.
“이것이 그녀의 신비 이면의 공포였던 것이지. 그녀의 진명은 아직 모르나… 나는 이것을 ‘타르데마’라 이름붙였다. 부재가 낳은 영면에 붙이기에는 적당한 가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 지는 아무래도 좋아요!”
아코가 소리질렀다.
“그딴 설정 놀음 말고 해결할 방안은 있는 거겠죠? 그러니까 이런 말을 꺼낸 것 아니에요?”
“그렇다.”
“에…?”
의외로 순순히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자 아코는 오히려 좀 놀랐다.
“이 현상은 색채와의 접촉으로 인해 강제로 반전되어 고정된 이전의 현상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디까지나 이 반전의 주도권은 소라사키 히나, 그 학생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지.”
“그러면 위원장님이 자신의 의지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단 말인가요? 그건 말도 안 돼요! 그분은 그럴 분이…!”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마에스트로가 아코의 말을 틀어막았다.
“신비와 공포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이 숭고 아래의 양면성을 구성하는 것은 이유 없이 그런 것이 아니지.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같은 근원, 무지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무지요?”
“신비란 무지지. 알 수 없기에 곧 신비인 것이다. 허나… 동시에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알 수 없기에 곧 공포인 것이다.”
“...?”
“너는 네가 존경해 마지않는 히나라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저는… 저는 위원장님에 대해 뭐든 알고 있다구요! 커피 취향, 필체, 일과, 뭐든지…”
그러나 마에스트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표면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너는 그녀의 신비만을 추종하고, 공포에서는 눈을 돌리려 하지 않았나? 너는 그녀의 책임감, 사명, 의지를 존경했다. 그러나 그 미덕 아래에는 태만, 응석, 나약함 역시 자리잡고 있는 법이지. 하지만 너는 그녀의 그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네게 있어 너의 상사는 언제나… 완벽한 사람이어야만 했기 때문이지. 그것은 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에게서 선망과 동경, 기대의 대상이 된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다. 그의 내면의 욕구, 그녀의 양면성을 눈치채고 포용하고 안아 준 유일한 존재는 바로 선생뿐이었지. 그러나 선생이 부재한 지금, 유일한 이해자를 잃은 그녀는 스스로의 의지로 그녀의 존재를 반전시켰다.”
“어째서… 어째서…”
아코가 망연자실하게 말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왜 저한테 상담하지 않은 거죠? 저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들어 드릴 수 있었는데…”
“너의 그녀에 대한 숭배는 이해가 아니다. 곧 무지에 한없이 가깝지. 일방적으로 우러르는 대상과는 진정한 이해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에스트로가 매정하게 단언했다.
아코가 풀썩 주저앉았다.
“허나 그건 네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순적이지만 때문에 더욱 흥미롭고… 그래. 낭만적이지. 소라사키 히나 역시 너와 정확히 같은 기작으로 선생의 미메시스를 만들어 내었으니 말이야.”
선생이라는 단어가 다시 언급되자 아코가 주저앉은 그대로 마에스트로를 다시 올려다봤다.
“베푸는 사랑, 끝없는 애정이 선생을 구성하는 본질 중 하나였으나 그것이 조건 없을지언정 단방향적이고 맹목적인 것이 아니었지. 그녀가 만들어낸 선생에 관한 꿈은… 선생과 함께하는 행복한 한때가 끝도 없이 계속되는, 그녀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이상향이다. 하지만 그 선생이 정말로 그런 것을 바랬으리라 생각하나?”
말할 것도 없었다. 그건 아코도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
“선생이 실재할 때는 그의 실존 덕에 본인의 이상과 뜻이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나… 그의 비실재로 인해 불투명해진 상징성이 숭배와 그리움, 단반향의 애정으로 변질되어 왜곡된 형태로서 재현되었다. 그러나 차마 현실에서 모방이나마 선생의 아바타를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그녀는 다른 방법을 취했지.”
“그것이…”
“그래. 모든 것이 용납되는, 꿈 속의 영역에서 만들어 낸 것이지. 자신이 원하는 선생의 모습을, 꿈 속에서 구현시킨 것이다. 꿈 속에서 선생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다면, 이것이 영원한 잠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렇게 말한 마에스트로는 다시 예의 그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솔직히 말하면 선생 같은 존재를 이렇게 불완전한 형태로 해석하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군. 허나 예술에 관한 한 자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이 자명한 법이니… 어떻게 보면 이것 역시 양면성이란 것이겠지. 그래. 이를테면… 네가 선생에게 받았던 그… 목줄처럼 말이다.”
“푸에취?”
갑자기 완전히 의외의 단어가 나오자 아코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네? …네? 뭐라고요?”
“들리지 않았나. 그 목줄 말이다.”
마에스트로가 재차 언급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채자 아코의 얼굴이 단숨에 불타는 것처럼 새빻갛게 달아올랐다.
“아, 아, 아… 아아아아!!! 그, 그걸 대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에요!”
“그걸 지금 묻는 건가. 네가 이 꿈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샬레의 개인실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회상하고 있엇던 물건이 바로 그 목줄일진데.”
“아, 아훗, 아, 아아아아!”
완전히 얼빠진 표정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아코는 개의치 않고 마에스트로가 말을 이었다.
“당황할 것 없다. 그건 굴종과 예속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강한 인연의 상징이기도 하지. 목줄을 쥐고 있는 대상과 맨 대상은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으으으응읏!”
마에스트로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더 할수록 아코의 전신이 괴상한 각도로 마구 뒤틀렸다.
그러나 마에스트로는 순수한 감탄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와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고 싶다는 욕구… 그것을 물리적 형태로서 남겨 증거하고자 한 것인가. 영특한 방법이다. 너와 같은 학생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수단치고는 조악함의 수준을 벗어났군.”
마에스트로는 손끝에서 방금 언급한 그 목줄을 만들어 띄워 보였다.
“아마 선생도 그런 제자의 성장을 기념하고자 이것을 간직했던 것이겠지.”
물론 전혀 아니었다.
“그, 그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에요!”
아코가 이리 내요! 라고 외치며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뛰었으나 마에스트로는 목줄을 띄운 손을 들어 올리더니 다시 소멸시켰다.
“꿈 속의 모조품이지. 진품이 아니니 염려할 것 없다.”
“그럼 그 이야긴 이제 그만 해요!”
한계까지 얼굴이 새빨개진 아코가 마구 횡설수설했다.
“선, 선생님을 찾으면 그딴 건 당장 없애 버리라고 할 테니까요!”
하지만 마에스트로는 그녀가 그러지 않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손을 마구 휘젓는 그녀를 바라보며 마에스트로가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네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으니, 이번엔 화제를 바꿔 내가 질문을 하나 하지. 만약에 선생이 정말로 너와 이 세계를 버리고 떠난 거라면 어떻게 할 셈이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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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야
마에스트로 캐해석 미쳤노
검양도 그렇고 빌런 대사를 존나 맛있게 쓰네 ㄹ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