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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핫산) 오토기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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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 #S #드라마 #오토기

원본 by haito

====================

<1> ~ <4>

<1>

“─산책 가자, 선생님.”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다음 날이었다.

당신이 오토기에게 이끌려 나온 것은.

불안장애라든가, 적응장애라든가.

정식 병명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제대로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은 근래 줄곧 이어진 증상이었다.

업무상 나누었던 대화도, 읽었던 만화의 등장인물 이름도 우수수 빠져나가 버린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무언가 계기가…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생각이 빙글빙글 맴돌다 보니 어느샌가 창밖은 흐려져 있었다.

시계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이미 정오를 넘겼다는 것을.

“아니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니까. 마침 오늘 나 한가하고 말이야!”

3시간.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주었는데,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한 채…하염없이 기다리게 했다.

미소로 얼버무리려 해도 입꼬리를 올리는 법을 잊어버렸고, ‘미안해’라고 사과하려 해도 그 세 글자의 발음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볼품없이 굳어버린 당신의 곁에서 그녀는 가만히 기다려 주고 있다.

부드러운 미소가 눈물겹도록 고마우면서도 그 이상으로…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

선생이잖나, 당신은.

그런데도 이 꼴이라니.

“─저기 선생님, 나 이거 읽고 있어도 돼?”

나선처럼 맴돌던 사고가 뚝 멈춘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어질러진 거실.

오토기가 손에 쥔 것은 시대착오적인 여행 잡지였다.

여행지 정보 따윈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시대, 실려 있는 내용조차 한참은 철 지난 옛날 것.

그런데도 언젠가 당신이 사들인 한 권이었다.

대체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 건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 것인지. 교복 차림의 소녀는 페이지를 나른하게 넘기고 있다.

“선생님, 레드윈터에는 가본 적 있어?

봐봐, 여기. 인생에 한 번쯤은 오로라 같은 걸 보고 싶잖아.”

제법 값비싸 보이는 호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토기는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소대 동료들과 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가보는 게 어떠냐.’라고 넌지시 권해오는 걸까.

어쩐지 양쪽 다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심심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미안한 노릇이었다.

커피라도 끓여와야겠다.

그렇게 상각하며 당신이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긴 순간.

“와앗!?”

쿵, 하고. 두 번의 충격이 자취방을 무겁게 울렸다.

진상은 단순했다,

당신이 봉지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언제나 즐겨 마시던 커피 분말.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가루를 사방에 흩뿌려 버렸고─

또 다른 소리는, 그런 자신에게 분을 이기지 못한 당신이…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친 소리였다.

오른손이 저렸고 새끼손가락 끝이 시큰거렸다.

그런 통증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은 자신을 향한 지독한 실망감 때문이었다.

“선생님, 괜찮아?”

달려오는 학생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당신의 내면에서는 사고가 맹렬히 회전했다.

아무리 초조해지더라도 결코 물건에 화풀이하지 않는다.

자신은 그런 인간이라고 믿어왔다.

막다른 곳에 몰리더라도 상냥함을 유지하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존재라고.

그것이 한낱 얄팍한 환상에 불과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저 상태가 좋았을 뿐이다.

컨디션이 받쳐주었기에 당신은 ‘선생’이라는 가면을 유지할 수 있었을 뿐.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런 껍데기는 가차 없이 벗겨지고 만다.

진짜 당신은 한없이 보잘것없고, 어떻게 원래대로 돌아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어서…….

“…왠지 이런 짤방 본 적 있는 것 같아.

반려동물 밥그릇에 사료를 무지막지하게 쏟아부어 버리는 거.

어쩌다 보면 참 웃기단 말이지.”

초조해하는 자신에게 다시금 짜증을 느끼는 악순환.

그런 당신을 심연에서 끌어당긴 것은 또다시 소녀의 목소리였다.

30분.

바닥에 쏟아진 가루를 앞에 둔 채, 멍하니 있기를 30분.

간신히 정신을 되찾은 당신의 곁에서 그녀는 여전히 생긋 미소 짓고 있었다.

깔끔하게 바닥을 청소해 두고는 ‘조금 아까울지도’라며 메롱 혀를 내밀어 보이고.

그러고 나서─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좋아! 마침 맑게 갰으니까, 그럼─”

─산책 가자, 선생님!

봄바람이었다.

계절은 여전히 한겨울의 한복판이었고, 벚꽃 같은 건 흔적도 보이지 않았지만.

커튼을 흔드는 봄바람이었다.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겨우 하늘이 갠 평범한 오후.

당신의 손을 맞잡아 오는 그녀는 계절을 앞선 봄바람이었다.

<2>

걷고, 또 걸었다.

기울어 가는 태양의 궤적을 뒤쫓듯, 목적지 따윈 미리 정해두지도 않은 채.

당신과 오토기는 인적 없는 평일의 거리를 하염없이 걸어갔다.

어째서 동행해 주는 걸까, 거북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가만히 질문을 던지려던 바로 그 순간.

“앗─달려, 선생님!”

당신의 오른손을 잡아끌며 오토기는 질주했다.

무슨 일이라도 터진 걸까.

그런 의문이 스쳤지만, 눈앞에 나타난 것은 그저 평범한 신호등이었다.

타이밍 나쁘게 막 적색으로 바뀐, 유독 녹이 가득 슬어 있는 신호기를 멀리 바라보며…

가냘픈 소녀는 땋은 머리를 흔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몰랐어, 선생님? 여기 횡단보도는 신호가 한참이나 걸린단 말이야.”

아주 성 한 채가 뚝딱 세워져 버릴 정도로 말이야!

과장되게 양팔을 펼쳐 보여도 당신은 그저 농담이려니 생각했다.

‘과연 보통이 아니구나’라고 실감하게 된 것은, 정말로 무지막지하게 기다리게 된 탓이었다.

어딘가에 수동 버튼이라도 숨겨져 있는 걸까, 기계 시스템의 고장일까.

그런 의구심이 들 정도로 보행자 표시등은 적색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고─내가 지금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선생님?”

정적이 길어지면 언제나 사고 회로가 가속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멍하니 서 있는 와중에도, 당신에게는 산더미처럼 처리해야 할 과제들이 쌓여 있을 터였다.

해야만 하는 일들이,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부응해 주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불가능해진 것은 어째서일까.

단순히 나태해진 걸까.

그렇다면 어째서 이토록 괴로운 걸까.

두개골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생각이.

당신의 내면과 외부가 완전히 격리되어 버린 듯한 지독한 이질감.

엉망진창으로 맴도는 단어들 탓에 당신의 발끝은 움직이지 않았다…하지만.

“가자, 선생님.”

그녀에게 손을 이끌린 찰나, 어째서인지 앞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날,

특별한 이벤트 같은 건 단 하나도 없는 평범한 날.

그렇다 하더라도, 요약하자면 그런 날이었다.

당신과 오토기가 걸어 나가는 것은, 그런 사소한─산책의 날이었다.

<3>

백귀야행으로 목적지를 잡은 것은 그녀의 출신지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하이킹 코스로 들어선 것은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등반가 같은 대사를 중얼거리며, 당신과 오토기는 고개를 올랐다.

1시간.

처음 1시간만큼은 맑은 공기를 만끽하며 나아갔지만─

“─후우. 아하핫. 여기 절대 초보자용 코스가 아니네.”

간신히 도달한 산 정상.

‘살았다’라며 벤치에 주저앉아 한 명과 또 한 명은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당신의 다리는 진작에 감각이 마비되어 버렸고, 내일은 근육통 확정이다.

2리터짜리 스포츠음료는 완전히 비어 버려 비싼 가격의 자판기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는 수순이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아주 조그맣게 축소된 도시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전신의 피로가 단숨에 날아가는 듯도 하여─

“─앗, 당첨이다.”

띠릭, 띠릭, 띠릭.

7 숫자가 나란히 정렬되더니, 비싼 자판기가 음료 한 병을 더 배출해 냈다.

돈을 지불한 것은 당신이었고, 버튼을 누른 것은 그녀였다.

그렇다면 이 한 병은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은 불어오는 산바람이 너무나도 상쾌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서는 학생에게 양보해야 마땅하다.

애초부터 ‘보’를 낼 작정으로 당신은 오른손을 내밀었지만.

“후후훗, 그럼 나는 ‘주먹’을 낼게?”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알아차려 버린 이상, 그대로 실행해 보고 싶어졌다.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승리한 것은 놀랍게도 당신이었다.

당신은 주먹을 냈고, 그녀는 가위를 냈다.

뒤틀린 계책들이 묘하게 웃겨서, 맑게 갠 산 정상 위로 웃음소리가 겹쳤다.

“…좋은 곳이지, 백귀야행. 같이 살아볼래? 쓰레기 배출 규정이 조금 까다롭긴 하지만 말이야.”

만발한 벚꽃과 밤하늘의 성좌처럼 빛나는 등롱 불빛들.

서서히 저무는 거리의 실루엣을 내려다보며 소녀는 생긋 웃어 주었다.

끄덕인들 바뀌는 것은 없다,

설마 정말로 현실을 내팽개치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말만으로도 기뻤다.

의미 따윈 존재하지 않아도, 그 어떤 복잡한 사고를 거치지 않았어도.

그저 웃어 준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웠다.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전철에 흔들리는 귀갓길,

소녀의 중얼거림이 툭 하니 흘러나왔다.

희미한 목소리였다.

상대에게 들릴 거로 생각하지 않은 읊조림인지,

아니면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가는 잠꼬대 같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본심만큼은 알 수 있었다.

뭐라도 상관없다.

가까운 거리든 먼 타향이든, 주문하는 메뉴가 오믈렛이든 함박스테이크든.

모르는 모퉁이를 돌아서, 처음 마주하는 편의점 같은 것을 발견해 버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내일은 어디로 갈까, 선생님.”

명분 없이 축하해 보자.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평범한 날을, 당신이 이 살아있는 하루를.

의미 없이 걸어가 보자.

이정표 같은 것이 없어도, 아침 햇살이 당신을 완벽하게 구원해 주지 못해도.

<4>

세상을 내버려 둔 채 당신은 정지한다.

당신을 내버려 둔 채 세상은 전진한다.

언젠가.

아무런 성과 없이 흘려보낸 이 나날을, 후회하게 될 ‘언젠가’가 도래하게 되는 걸까.

끊임없이 걸려 오는 전화에, 가차 없이 넘겨지는 달력 페이지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당신은 그 중압감에 으스러질 것만 같은 막막함을 느끼지만…….

“─이봐. 이봐─요, 선생님─?”

커튼 자락을 뒤흔들며, 좀처럼 늘지 않는 서툰 휘파람을 불어대며.

당신의 손을 잡아끄는 그녀는 미소 지으며 걸어가 준다.

도심을 파괴하는 괴수처럼, 누구보다도 다정한 테디베어처럼.

세상의 온갖 룰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땋은 머리의 소녀는 그저 쾌청하게 웃어 보이며─

“산책 방해 금지!”

언제나 가만히 봄바람이 불어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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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6.08번역

소설 핫산) 오토기와 산책

#텐진야마 오토기#소설
좋아요 0댓글 3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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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haito_0419작가
게시물 34개
고DC
고관위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6.06.08 23:24
조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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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나
ㅇDC
ㅇㅇ126.06.09

명소랑 뭔가 이어지지는 않나보네 옴니버스물인건가

ㅇDC
ㅇㅇ226.06.09

오토기랑 금븽어 산책

ㅇDC
ㅇㅇ326.06.09

봄바람이 분다면야 그걸로 족하다. 덧없을 줄 알더라도 꽃은 아름답게 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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