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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 #M #드라마 #아츠코

원본 by もとりな

=======================

<1> ~ <2>

<1>

하늘이 푸르다.

문득 창밖을 내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의 D.U.는 쾌청하다.

이제 봄 안개가 눈에 띌 법한 계절이 되었을 텐데, 학원도시를 내려다보는 광활한 하늘에는 안개는커녕 구름 한 점조차 없다.

맑은 바다가 하늘에 떠 있는 것만 같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방은 제법 높은 위치에 있어서 이 공기마저 정화할 것 같은 푸름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나 자신이 작은 벼룩처럼 느껴질 정도로 장대한 이 광경을 말로 표현한다면, 역시 ‘푸르다’라는 단순한 감상 말고는 달리 없을 것이다.

“하늘을 뒤덮은 감벽색”이라느니,

“우리를 지켜보는 군청색”이라느니 하는 식의

에두른 표현이나 복잡한 묘사는 아무래도 멋이 없다.

마음을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이 하늘을 나타내는 데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렇게 확신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저 푸름 속에는 담겨 있었다.

그 ‘무언가’의 정체를 굳이 파헤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눈앞의 푸름을 눈에 새기고, 잊지 않도록 마음 깊은 곳에 각인해야 할 것이다.

…뭐, 그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책상 앞에만 붙어 있는 게 아까워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쌓인 서류를 방치하고 밖으로 뛰쳐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나는 샬레의 선생이니까 해야 할 업무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곧 직무 유기, 혹은 책임 회피다.

유우카 같은 아이가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뾰로통하게 화를 내는 청라색 머리의 소녀를 상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이 끝나면 산책이라도 갈까 생각하며, 햇살을 받고 있는 서류 뭉치를 하나 집어 들었다.

‘위대한 수염의 권위를 과시하는 사업 계획안’.

복사 용지에 고딕체로 큼지막하게 새겨진 글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누가 세운 기획인지 뻔히 보인다.

얼마 전에는 “샬레에 나의 동상을 건설하라!”라며 사단 규모의 인원을 이끌고 들이닥쳤고,

그전에는 평소처럼 쿠데타 진압 도움을 요청해 왔다.

이번에는 또 어떤 엉뚱한 안건을 가져왔을까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서류를 넘기자,

그 안에서 우표 크기만 한 작은 종이 한 장이 팔랑이며 떨어졌다.

“서류 정리하다가 섞여 들어갔나?”

태평하게 중얼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주워 올렸다.

복사 용지가 아니라 오히려 양피지에 가까운 감촉에 위화감을 느끼며 무심코 종이를 보았다.

때 묻고 너덜너덜해진 종잇조각.

거기에는 ‘식량 구함/227’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

나중에 따뜻한 먹을거리라도 좀 챙겨다 줘야겠다.

겸사겸사 위대하신 서기장께 처우 개선도 제안해 봐야겠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다짐하고는 살며시 주머니에 종이를 넣었다.

그 아이들도 고생이 많다.

이번에는 나뭇가지를 갉아 먹는 지경까지 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가혹한 생활 환경 속에서 분투하는 소녀들을 떠올리며 다시 서류와 마주하려던 찰나.

삐빅.

그런 무기질적인 소리가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소리의 발원지, 책상 구석에 놓인 간소한 디지털시계의 검은 화면 속에서 ‘12:00’라는 하얀 글자가 알람 소리에 맞춰 깜빡거리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손을 뻗어 상단의 버튼을 누르자 다시 집무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선생님은 점심을 거르시는 경우가 많으니, 정오에 알람을 맞추시는 게 좋겠네요.”라던 구호기사단의 참견쟁이 소녀가 했던 말이다.

이렇게 그녀의 조언대로 점심시간에 맞춰 타이머를 설정한 뒤로는 나름대로 건강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메뉴가 빵이나 컵라면이 되기 쉽다는 점에 대해서는 하나도 발전하지 않았지만.

…일단 말해두겠는데, 내 생활 습관이 완전히 파악당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코멘트는 삼가겠다.

나를 생각해서 해준 일이다.

순순히 감사해야겠지.

어찌 됐든 바쁜 업무도 일단락.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평소처럼 빵으로 때울 수는─ 없다.

오늘은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등받이에 몸을 살짝 기대고 옆 책상을 보았다.

그곳에는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덧없는 분위기의 소녀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서류 뭉치를 손에 든 채, 알람을 끈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에게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갑자기 기계음이 울리면 놀라기도 할 것이다.

눈을 깜빡이며 의아해하는 소녀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방금 그건 점심을 알리는 신호…그러니까 밥 먹을 시간이라는 뜻이야,

아츠코. 놀라게 해서 미안해.”

“아, 그런 거였구나. 괜찮아, 조금 궁금했을 뿐이니까.”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응. 게다가 방금 그 소리가 아니었으면 나도 밥 먹는 걸 잊어버릴 뻔했어.

오히려 감사해야겠네.”

“아하하, 아츠코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열중하는 타입이구나…….”

“응. 선생님이랑 똑같네.”

귀여운 소리를 하며 수줍게 웃는 이 소녀의 이름은 하카리 아츠코.

겉모습이나 분위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영애에 가깝고, 실제로 그 평가도 틀린 것은 아니다.

희귀한 혈통을 가진 자로 길러진 그녀는 바깥세상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증오로 왜곡된 아리우스에 묶여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그녀는 바깥의 평범함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츠코가 갇혀 있었던 것은 옛날이야기다.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위기를 극복한 그녀를 묶어두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내 몫이다.

평범함을, 청춘을, 미소를.

그녀가, 그녀들이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처음부터 하나씩 가르쳐 주면 된다.

“선생님?”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아츠코, 오늘 일을 도와줘서 고마워.

혼자였으면 오늘 안에 끝날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덕분에 어떻게든 될 것 같아.”

“아…아니야, 신경 쓰지 마.

미사키는 지금 거점의 안전을 확인하러 순찰하러 갔고, 히요리는 잡지를 주우러 어디론가 가버려서…마침 한가했거든.”

“그, 그렇구나…….”

“응. 오히려 갑자기 찾아온 내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미안해.”

눈썹을 내리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아츠코에게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아까 말했듯이 그녀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아리우스에서 기른 기술인지 타고난 재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요령이 매우 좋아서 간단한 분류 정도의 일은 금방 배워서 해냈다.

덕분에 나는 잡무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중요한 안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라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그저 사실일 뿐이다.

“그러니까 아츠코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어.”

“그렇구나. 선생님에게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야.”

“도움이 된 정도가 아니라, 내가 발목을 잡는 건 아닌가 싶어서 미안할 정도였는데…….

뭐, 그건 일단 제쳐두고.”

의자를 뒤로 빼며 일어났다.

그것을 본 아츠코도 똑같이 일어서더니, 다시금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연지색 눈동자를 나에게 향했다.

그것은 밖의 푸른색과 어우러져 일종의 보석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수려했다.

“점심 먹으러 가는 거지? 나도 같이 가도 될까?”

“물론이지. 아, 맞다. 오늘은 도와준 보답으로 내가 살게.”

“…음, 그런 생각으로 말한 건 아니었지만.”

“알고 있어. 내가 사고 싶어서 사는 것뿐이야.”

“그…고마워.”

드물게 송구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아츠코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

눈앞의 소녀가 그런 속물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마 순수한 흥미에서 나온 발언이었을 것이다.

인간, 거리, 일상, 평화, 그리고 식사.

그녀는 아리우스 밖에서 많은 것들을 접하며 현재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런 알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학생을 도와줄 수 있다면, 식비 천 엔이나 이천 엔 정도는 싼 편이다.

오히려 기쁘게 내놓을 수 있다.

“그래서 아츠코. 가고 싶은 곳이 있니?

최근에 월급을 받은 참이라 웬만한 가게는 다 데려가 줄 수 있는데…….”

“음……. 그렇다면 카페에 가고 싶어.”

“카페? 아, 혹시 그 꽃집 카페?”

“꽃집…아마 거기인 것 같아.

히요리가 보던 잡지에 꽃을 테마로 한 카페가 생겼다고 적혀 있어서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선생님도 알고 있었구나.”

“응, 알고 있지. 아츠코가 좋아할 것 같아서 미리 알아봐 뒀거든.”

“정말?”

“그럼. 언젠가 같이 가고 싶었거든.

원래 꽃집을 운영하던 분이 심기일전해서 연 가게래.

동서고금 온갖 꽃들이 모여 있고, 정원 공간에서는 꽃을 가까이서 보면서 홍차를 마실 수 있다는 모양이야.”

“그렇구나……. 이런 날씨에 보는 그 풍경은 분명 예쁘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웅장한 바깥 경치를 보며 아직 가보지 못한 화원을 멍하니 상상하는 아츠코.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지는 당연히 본인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응. 선생님, 빨리 가자.”

다시 나를 향한 그녀의 눈동자는 기대와 고양감으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미리 카페를 조사해 둔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나이에 걸맞은 표정을 보여주는 아츠코를 보며 마음 깊은 곳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 미소를 떠올린다면 당분간은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출발하자. 잊은 물건 없도록 하고.”

“응.”

“그리고 마스크도.”

“아, 맞다. 얼굴이 알려지면 곤란하니까…….”

“혹시 모르니까. 샬레 안이라면 괜찮지만, 밖은.”

“응. 고마워, 선생님.”

후드를 쓰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아츠코를 곁눈질하며 나도 준비한다.

그래봤자 지갑을 챙기고 겉옷을 입고 싯딤의 상자를 가방에 넣는 정도지만.

대강의 준비를 마치고 방의 불을 끄자, 실내에는 부드러운 햇살만이 남겨졌다.

조용히 방을 채우는 공기에 무언가 감개무량한 기분을 느끼며 방 밖으로 나간다.

아츠코도 같은 감정에 휩싸여 있었던 것일까.

움직이기 시작한 나를 보고 아차 싶었는지 서둘러 뒤를 쫓아왔다.

“기다려, 선생님.”

“괜찮아. 두고 가지 않아.”

이 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기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혼자였다면 지루했겠지만, 지금은 곁에 사랑스러운 대화 상대가 있으니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츠코와는 가끔밖에 만날 수 없다.

그녀의 입장상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쓸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만났을 때 나눌 이야기는 끝이 없다.

“퇴로가 없는 건물 안에서 발키리에게 쫓겨서 힘들었다.”

“하얀 꽃이 필 줄 알았는데 파란 꽃이 피어서 깜짝 놀랐다.”

“미사키가 고양이랑 눈싸움하고 있는 게 귀여웠다.”

걱정되는 이야기부터 흐뭇한 이야기, 당사자가 들으면 기억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맞을 것 같은 이야기까지 각양각색이다.

마스크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즐겁게 이야기하는 아츠코를 보고 있으면 나도 행복해진다.

그녀가 소란스럽고 소중한 청춘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다.

평범한 청춘과는 다르다고?

그렇지 않다.

청춘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아츠코 자신이 십 대의 짧은 순간을 찬란하게 보내고, 소중한 사람들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청춘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것이다.

세상 구석탱이면 어떠랴.

끝없는 도피 행각이면 어떠랴.

그녀들이 그 순간을 즐겁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만약 그런 삶이 싫어지고 그녀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내가 어떻게든 하면 된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선생을 계속해 나가는 의미니까.

청춘에 전력을 다하는 소녀와 나를, 창밖에서 끝없는 푸름이 지켜보고 있었다.

<2>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익숙한 1층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다만 아침이나 저녁때와는 달리 사람이 적다.

적은 정도가 아니라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대에는 대부분의 학생이 점심을 먹고 있어서 샬레의 현관인 이곳을 찾는 인물은 드물다.

그렇다 해도 아무도 없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조금 쓸쓸한 기분도 들지만, 아츠코의 입장도 있어서 지금은 오히려 안도감이 더 크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햇살이 비치는 로비를 걷기 시작했지만…….

아츠코가 따라오지 않는다.

의아해서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츠코, 왜 그래?”

“…저기, 선생님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질문?”

아츠코의 질문은 드문 일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녀는 다양한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를 만나면 즐겁게 “저건 뭐야?”,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라고 물어보곤 한다.

가끔은 나도 모르는 것이나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질문도 있어서 공부가 된다.

이번에도 그런 설레는 질의응답 시간인가 싶었지만…아츠코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

그녀는 마스크를 벗고 어딘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연지색 눈동자 깊은 곳에는 당혹감도 서려 있는 듯했다.

답을 알고 있는데 제대로 언어화하지 못하는, 그런 답답한 감정을 쏟아내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목소리를 가다듬던 아츠코였지만, 이윽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선생님. 선생님에게…‘기적’이란 뭐야?”

“기적? 그건 또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다.

아츠코는 나의 당혹감을 읽었는지, 당황한 듯 질문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게…저번에 미사키가 그랬거든. ‘기적 같은 건 없어’라고.”

“…….”

“그 말 자체는 아리우스에서도 자주 듣던 말이었어.

베아트리체도 사오리도, 아리우스에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다 똑같은 말을 했고….”

아츠코는 슬픈 듯 중얼거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아리우스를 지배했던 베아트리체라면 그 말을 썼을 것이다.

아이들에게서 저항하려는 의지를, 희망을 빼앗기 위해.

그리고 그 사상밖에 배울 수 없었던 아리우스 스쿼드도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것은 명확한 의지를 담은 말.

눈앞의 희망을 믿고 실제로 지금의 행복을 거머쥔 소녀는 기적의 존재를 긍정한다.

확신을 품고 말한다.

그런데도 소녀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망설임이 있었다.

그 정체를 찾아내려는 듯 아츠코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미사키의 말에 ‘기적은 있어’라고 대답했더니, ‘어디에?’라고 묻더라고.

그때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구나.”

“…응.”

내 목소리에 아츠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기적은 있어. 나는 그렇게 확신해.

하지만…나는 미사키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어.

목…아니, 마음 깊은 곳에 말이 걸려서 나오지 않았어.”

아츠코는 분한 듯 말하더니, 후 하고 숨을 내뱉으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다시 그 흔들리는 눈동자를 나에게 향하며 물었다.

“그러니까…선생님, 알려줘.

선생님에게 ‘기적’이란 뭐야? 어떤 거야?

그걸 알게 되면, 나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 질문을 끝으로 아츠코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기다리겠다는 뜻이리라.

기적.

아츠코가 미사키에게 그 존재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힌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초에 기적이란 모호한 것이다.

언제 일어날지도, 왜 일어나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런 막연한 존재를 증명하라니 애당초 무리한 이야기다.

적어도 눈앞의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

창밖을 본다.

1층에서 보는 저 푸름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았을 때와는 또 다르게 보였다.

저쪽이 다른 것을 압도하는 듯한 푸름이라면 이 광경은─

“뭐야. ‘지켜본다.’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잖아.”

“?”

“아츠코.”

갑작스러운 말에 물음표를 띄우는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평소 같은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거둔 아츠코의 모습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자, 눈앞에서 답을 기다리는 학생을 인도해 주자.

그것이 나의 역할이니까.

조용히 결심한 나는 검지를 저 푸름을 향해 치켜들었다.

이끌리듯 아츠코의 시선도 창밖으로 향했다.

그것을 확인하고 한마디.

“오늘 날씨가 참 좋네.”

“…으, 응. 그, 그러네?”

“기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

내 말에 아츠코가 굳어버렸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뒤, 턱에 손을 얹고 천천히 그 의미를 곱씹었다.

그리고.

“…어? 그게 다야?”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녀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는 날은 흔치 않다.

뭐, 그런 것보다 그녀의 의문에 답해 주자.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다시 한마디.

“응!”

“…….”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아츠코는…눈을 가늘게 떴다.

말 안 듣는 아이를 훈계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뭐랄까, 분위기만으로도 “좀 더 진지하게 임해”라고 말하는 기운마저 느껴진다.

“선생님, 좀 더 진지하게 해줘.”

결국 입으로도 한 소리 들었다.

“아니, 나는 진지한데…….”

“그럼 더 심각해.”

“음, 아츠코는 왜 그렇게 생각해?”

“왜냐니…선생님은 하늘이 맑은 게 자신에게 기적이라고 한 거잖아?”

“맞아.”

“…하늘이 맑다는 건 기적이 아니라 우연이야.”

“그 두 가지가 뭐가 다른데?”

“완전히 달라.

우연은 그냥 우연이고, 기적은 좀 더 이렇게…사람의 마음을 근본부터 바꾸거나 인생을 좌우하는 무언가야.”

“하지만 내 마음은 저 하늘 덕분에 맑게 정화됐는걸?”

“억지 부리지 마.”

한숨 섞인 훈계를 듣고 말았다.

아무래도 전달이 잘 안된 모양이다.

이건 내 실수다.

확실히 이 정도로 추상적이면 오해할 만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마음속으로 반성하며 다시 아츠코에게 말을 건넸다.

“아츠코, 너는 저 하늘이 기적이 아니라고 했지.

그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근본부터 바꾸지 않았고…더 나아가 인생을 좌우하지 않기 때문이라서.

그렇게 이해하면 될까?”

“…응. 맞아, 그런 것 같아.”

아츠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드가 살짝 흔들렸다.

대답이 모호한 것을 보니, 그녀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기적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제 깨닫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렇구나……. 아츠코.”

“응?”

“아츠코는 저번에 나한테 예쁜 꽃을 보여줬지. 그 작은 주황색 꽃.”

“아…응. 기억하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그래서 아츠코, 내가 ‘아츠코가 나에게 꽃을 보여준 것이 기적이다’라고 말하면 믿어줄래?”

“음, 선생님이 하는 말이니까 믿고 싶지만…조금 의심스러울지도 몰라.

그런 사소한 일이 기적이라니…….”

“그럼 이건 어때?”

말을 고르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듯 말했다.

아츠코는 나에게 꽃을 보여준 것을 기적이 아니라고 했다.

그게 정말일까?

만약 그게 기적이 아니라면, 아츠코.

나는 너에게 반문하고 싶은 것이 있어.

“아츠코, 이전에 소중한 친구가 네게 꽃을 보여줬을 때…….

그때 무슨 생각을 했지?”

“…….”

“그걸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니?”

아츠코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치 무언가를 붙잡은 듯한, 아니.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붙잡은 듯한 그 표정에 나는 미소를 띠었다.

─아츠코의 과거.

그녀가 꽃을 사랑하는 것은, 그녀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친구가 그 계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자, 아츠코.

네가 그날 콘크리트 구석에서 꿋꿋하게 피어난 꽃을 발견한 것.

친구가 그것을 너에게 알려준 것.

그게…정말 우연일까?

“나는 네가 그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

나는 네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대답해 줘.

너에게 그 일은 그저 우연이었니? 네가 말한 것처럼…사소한 일이었어?”

내 말에 아츠코가 떨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그 의미를 곱씹으며 생각하고.

그녀가 내놓은 대답은.

“아니야.”

“…….”

“우연 같은 게 아니야.

그런 말로 치부하고 싶지 않아.

그때 아즈사가 나에게 보여준 풍경은…틀림없이.”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이제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틀림없는 기적이야. 기적이었어.”

“아츠코.”

되새기듯 중얼거린 아츠코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래, 그것은 기적이다.

네 운명을 바꾼 단 하나뿐인 소중한 기적.

하지만 너는 나에게 꽃을 보여준 것은 기적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왜일까?

나는 아츠코의 정면까지 다가가 살짝 몸을 굽혀 시선을 맞췄다.

눈동자가 동요로 흔들리고 있다.

답은 찾았다.

아니, 이미 찾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 답답함이 얼굴 가득 넘쳐나서 괴로워 보였다.

그렇다면 선생으로서 그 괴로움을 덜어줘야지.

“아츠코. 기적은 말이야, 일으키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아니야.”

“그럼…기적이란 건 어떤 거야? 알려줘, 선생님.”

답에 도달하려는 눈빛을 보내는 아츠코.

강한 아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날이 진화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이들의 성장은 빠르다며 늙은이 같은 생각을 하며 질문에 답했다.

“기적은 말이야, 찾아내는 거야.”

“찾아…내는 것.”

그렇다.

기적이란 찾아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사소한 현상이라도 또 다른 누군가가 보면 그것은 기적이 된다.

예를 들어 갑자기 하늘이 맑아졌다고 해 보자.

그것만 들으면 하찮은 일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어느 곳에서 그 맑은 하늘은 한 소녀가 청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기적이 되었다.

예를 들어 망가졌을 축음기가 울리기 시작했다고 해 보자.

그것만 들으면 시시한 괴담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어느 곳에서 그 괴담은 한 소녀가 주인공을 지키기로 결심하는 기적이 되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친구에게 꽃을 보여줬다고 해 보자.

그것만 들으면 흔한 일상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어느 곳에서 그 꽃은 한 소녀의 앞날을 좌우하는 기적이 되었다.

기적은 딱히 희귀한 것이 아니다.

그 근처 콘크리트 구석에 당연하다는 듯이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좀처럼 기적이 되지 않는다.

아무도 그것을 기적이라고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츠코, 기적은 찾아내는 거야.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 거야.”

기적은 인식되었을 때 비로소 기적이 된다.

기적으로 발견되었을 때 비로소 기적이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찾아내는 것.”

“응.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적’의 형태야.”

내 안의 ‘기적’을 들은 아츠코는 걷기 시작했다.

후드를 벗어 던지고 눈앞의 광경을 모두 눈에 새기려는 듯 걷기 시작했다.

햇살이 비치는 출구 쪽으로, 빛이 있는 쪽으로.

나는 그것을 그저 바라보았다.

“선생님.”

답을 얻은 소녀가 입을 열었다.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듯, 무언가를 찾는 듯 걷는다.

그 모습이 어딘가 즐거워 보인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정말…좋은 기적이네.”

“응. 따뜻한 기적이야.”

“여기엔 사람이 없네. 이것도 기적일까?”

“응. 고요한 기적이지.”

“창밖에 꽃이 피어 있어. 저것도 분명…누군가에게는 기적이겠지.”

“응. 너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선생님.”

평소보다 아주 조금 들뜬 목소리.

빛나는 듯한 기적의 음색과 함께 아츠코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투명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세계는 기적으로 가득 차 있구나.”

“응. 바로 그거야.”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고 싶다.

그 말대로 세계는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남은 것은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다.

너희들이 그것을 해낼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지켜봐 줄게.

그리고 너희들이 일상에서 기적을 찾아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을 때.

그 순간을 나의 기적으로 삼을 거야.

그러니까 부탁이니 너희들의 기적을 보여줘.

앞으로도 계속.

더욱더 많이.

“선생님, 가자. 기적을 찾으러.”

아츠코가 밖으로 달려 나간다.

나도 그 뒷모습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어쩌다 키보토스에 발을 들여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선생 노릇을 시작하고.

그래, 선생으로서의 시작에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선생을 계속해 나갈 이유는 이제 생겼다.

지켜보는 것.

그녀들의 미래를, 성장을, 청춘을.

나는 그러기 위해 이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학생들의 기적을, 나의 기적을 찾기 위해서.

그러니까, 자.

지금은 천천히 걸어가자.

아직 이야기의 결말 같은 건 보이지 않으니까.

“자, 오늘은 어떤 기적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투명한 푸름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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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8.16번역

소설 핫산) 기적의 형태

#소설
좋아요 0댓글 6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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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
motorina_blue작가
게시물 12개
고DC
고관위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6.08.1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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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나
ㅇDC
ㅇㅇ126.08.16
ㅇDC
ㅇㅇ226.08.16
ㅇDC
ㅇㅇ326.08.16
디시콘
ㅇDC
ㅇㅇ426.08.16

좋다

ㅇDC
ㅇㅇ526.08.16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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