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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핫산) Good Night,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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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 #M #드라마 #케이

원본 by haito

*역주 : 강철대륙 실장 이전에 집필된 글입니다.

===================

<1> ~ <4>

<1>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나도 모르게 밤바람을 맞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업무가 길어진 끝에 묵어가게 된, 깊은 밤의 밀레니엄.

베리타스에서 빌렸던 숙직실을 빠져나와 나는 홀로 본동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허리에 찬 열쇠 꾸러미에서 하나를 꺼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 바퀴 돌리자─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치며 눈앞에 야경이 펼쳐진다.

“…음, 좋은 경치로구나.”

한숨을 한 번.

끼이익 비명을 지르는 철제 난간에 몸을 맡기고 멍하니 내려다본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밤은 마침 그믐달이었던가.

평소와 비교해서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 빛나고 있었다.

“뭐, 저쪽은 조금 걱정되지만…….”

하늘의 광채에 뒤지지 않게 지상에도 불빛은 켜져 있다.

교사에서는 아직 몇몇 학생들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모양이다.

과연 밀레니엄…이라고 말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역시 아이들은 건강하게 잠을 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 이제 슬슬─”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관자놀이를 스치는 밤바람은 아직 너무 차갑다.

나는 마지막으로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선생님, 안녕하세요!”

─물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어딘가 기계적이고 투명한 광채.

천천히 손전등을 비추어 보자 그녀의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안녕.”

“우연이네요! 선생님을 만나서 아리스는 레벨업 할 정도로 기쁩니다!”

그런 천진난만한 목소리는 이런 한밤중의 정적 속에서 유독 잘 울려 퍼졌다.

자세를 바로잡고 심호흡을 한 번.

코트를 고쳐 입으며 나는 품속에 넣어둔 단말기를 신중하게 손으로 더듬어 쥐었다.

“하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런 깊은 밤에 무슨 일이야?”

“상쾌하게 슬립 상태로 전환되지 않아서요…….

누군가 있는 듯한 예감이 들어서 여기까지 달려와 버렸어요.”

그 말대로 그녀는 파자마 차림이었다.

기계의 몸이라고는 해도 역시 추워 보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코트를 빌려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런 빈틈을 보일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안, 되는 거였나요?”

“아니, 그런 건 아냐. 잠들지 못하는 밤쯤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내가 그렇게 대답해 주자 그녀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아장아장…이라는 귀여운 의성어가 어울릴 법한 보폭으로 내 쪽을 향해 다가온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면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두 팔을 벌려 환영했을 타이밍이리라.

“자, 그럼─”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달랐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곧게 편 등줄기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한 손은 그녀를 향해 견제하듯 두고, 다른 한 손은 언제든 싯딤의 상자에 액세스할 수 있도록 품속에 둔 채였다.

서로 뱃속을 떠보는 짓 따윈 무의미하다.

이야기는 빠른 편이 좋겠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나는 [눈앞의 존재]를 향해 말을 건넸다.

“─케이. 언제까지 아리스인 척할 거니?”

갑작스러운 대사가 날아든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멎었다.

0.몇 초간의 정적.

기웃기웃 주변을 둘러보고 당황한 듯한 태도로 나를 바라보다가…

그 말의 화살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이해한 순간,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을 했다.

“…선, 선생님?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 너는 아리스가 아닐 터란다, 케이.”

흔들리는 목소리도, 방황하는 시선도, 갈 곳을 잃은 손짓조차도 그렇다.

모두가 아리스와 판박이다.

용모는 완벽하게 똑같으니 예컨대 영상 너머였다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확실한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 아무리 아리스라 해도 상처받습니다!

아리스가 얼마나 그 녀석을 두려워했고, 그 시간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선생님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잖아요?!”

올곧은 시선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릴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한마디를 들은 순간 나는 확신을 가졌기에 단숨에 당하는 일은 없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는 한 걸음 더 말을 이어 나갔다.

“…응,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니까 말이야. 나 역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어째서 의심하시는 건가요……?”

요새 도시에서의 사건은 막을 내렸고 이야기는 일단 해피 엔딩으로 끝나 있었다.

리오는 자취를 감추었고 토키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지막 남은 한 명은 아직 아리스의 내면에 머물고 있다.

물빛을 투과해 보이는 듯한 보랏빛 눈동자를 향해 나는 가만히 시선을 던졌다.

그 깊은 곳에 잠복해 있는 것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는 선생이니까 알 수 있어. 눈 색깔은 같을지 몰라도 너는 케이라는 걸.”

그 순간, 주고받던 대화가 끊겼다.

그 누구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밤의 옥상에는 그저 바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소녀는 눈물을 더 글썽이며 변명할 말을 찾으려다─도중에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대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얄미운 사람이군요, 선생님.”

…아무래도 나는 선택을 그르치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양쪽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물든다.

그 몸짓의 마디마디마다 긴장감이 감돌았고…몸에 두른 분위기조차 천진난만한 소녀에서 냉철한 기계의 그것으로 변모했다.

“아아, 걱정하지 마세요.

완전히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했겠지요.”

휘날리는 파자마 자락을 귀찮다는 듯 붙잡고 그녀는 자조하듯 미소 지었다.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 움직임 또한 어딘가 어색했다.

아리스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것은 아마 일시적인 버그 같은 것이겠지요.

허용된 출력도 미미한 수준이라 곧 왕녀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억양 없는 목소리는 더없이 지루해 보였다.

병장을 기동하려 하거나 무언가와 접속을 시도하려 하고 있었지만…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을 깨달았는지 그녀는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선생님. 서두르지 않으실 겁니까?”

“…서두르다니, 무엇을?”

“말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당신의 입장이라면 저를 구속하기 위한 인원을 수배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목소리 톤으로 미루어 보아 결코 그것을 마음속 깊이 바라는 것은 아니리라.

가능하다면 그녀 역시 부과된 사명을 수행하고 싶었겠지만…현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리스 쪽이다.

그 증거로 과거에 느껴졌던 위압감은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치안유지 조직을 부르든가…그 신비를 사용하면 더 빠르겠지요.

불과 몇 분이면 저를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내 품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는 태블릿을 가리키며 케이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내뱉었다.

아무래도 저항할 의사는 없는 모양이다.

타임아웃을 기다리듯, 1초 1초가 빨리 지나가 주기를 바라는 듯이.

그녀는 그저 흘러가는 옅은 구름을 쫓을 뿐이었다.

툭 하고 텅 빈 말이 새어 나왔다.

“─그것이 당신의 역할이지 않습니까?”

색 잃은 시선은 역시 이 공간의 그 무엇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무기질적인 로직과 부과된 사명만으로 움직이는 존재.

아리스와는 완전히 다른 그녀가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건…….”

말을 흐렸지만…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그녀가 말한 대로 할 작정이었다.

C&C에는 연락을 취하려 했고 아로나도 깨워 두었다.

그녀를 구속한다.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 외에는 극히 리스크가 큰 선택지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네……. 응, 그럼 결정됐어.”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가…너무나도 차갑게 식어있었던 탓일까.

나는 역시 선생이었다.

약간의 위험은 감수하기로 하고 싯딤의 상자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바보같이 보일 정도로 느릿한 걸음으로 케이 쪽을 향해 다가가…그대로 옆을 지나쳐서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갔다.

“…어?”

“따라와 주지 않겠니? 그리 많이 걷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샬레의 선생님. 당신은 대체 무엇을……?”

예상치 못한 기동이었는지 당황한 듯한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틀림없이 적의와 경계가 섞여 있었고, 그러면서도 확실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보랏빛.

아아, 그렇다. 그렇다면 분명 괜찮을 테니까.

“─게임을 하자, 케이.”

작게 미소 지어 보이며 나는 어느 교실의 열쇠를 손가락 끝으로 돌렸다.

<2>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하하. 하지만 너로서는 훤히 꿰뚫고 있는 일상이겠지?”

향한 곳은 게임개발부의 부실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깊이 잠들어 있어 평소라면 소란스러웠을 버튼 소리도, 팬이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슬립 모드로 전환되는 것을 잊어버린 모니터의 불빛만이 자정을 훌쩍 넘긴 한밤중을 고요히 비추고 있었다.

“카트리지는…뭐, 이걸로 할까. 클래식하기도 하고.”

낮 동안의 시끌벅적함과는 딴판인 정적 속에서 나는 익숙한 가정용 게임기를 기동했다.

어느 칠칠치 못한 누군가의 탓으로 엉망으로 얽혀 있던 컨트롤러를 손으로 더듬어 풀고 본체에 접속한 뒤…

그 한쪽을 곁에 선 소녀에게 툭 하고 건넸다.

“자, 여기. 스켈레톤이 좋다면 바꿔주겠지만, 솔직히 이건 내가 쓰고 싶은걸…….”

“…저보고 상대하라는 뜻입니까?”

…적의로 가득 찬 눈동자를 보아하니, 도로 내던져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받아 들어 주었으니까…….

불안감은 접어두기로 하자.

“아아, 물론이지. 게임을 하는데 혼자라면 조금 쓸쓸하니까 말이야.”

고른 소프트웨어는 이 또한 유명한 횡스크롤 액션 게임.

언제든 2P가 참가할 수 있는 설정으로 맞추고 나는 게임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경쾌한 BGM이 흘러나왔지만, 옆 사람의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저는 그저 소멸을 기다릴 뿐입니다.

이곳에 온 것도 그저 그때까지 소란을 원치 않았을 뿐.”

화면에서 울리는 효과음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케이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옥상에서 대치했을 때와 비교하면 그 이면에는 미세하게나마 감정의 색채가 배어 있는 듯했다.

화면을 바라보는 한편으로 나는 변함없이 케이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의 너는 할 일이 없지?

그렇다면 아주 조금쯤은 놀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울 거라 생각하는데.”

“이해 불능. 저에게는 그런 욕구 따위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컨트롤러는 내려놓은 채 케이는 덤덤하게 부실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거치형 하드웨어, 휴대용 게임기, 컴퓨터에 아날로그 보드게임까지…….

모니터의 모호한 불빛에 비친 오락거리들을 마치 완전히 이질적인 괴물이라도 보듯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왕녀들의 모든 것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이런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까?”

비꼬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이고 순수한 의문이리라.

탁탁 소리를 내며 캐릭터를 움직이는 나의 손을 그녀는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벌레나 무언가를 관찰하듯, 몹시 냉철하고 무기질적인 시선으로.

“개체에게는 저마다 부과된 역할이 있을 터입니다.

그것을 팽개치고 이런 것에 흥미를 들이는 것은 극도로 생산성이 결여된 행위입니다.”

아마도 자신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무언가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단언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시간 낭비라는 듯 눈을 감으려 했고─.

“─아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즉시 돌아온 긍정에 그녀는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보았다.

곁눈질로 바라본 눈동자에는 아주 미세한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그런 변화를 똑똑히 포착하며 나는 나의 역할을 시작한다.

“애초에 나는 선생…교사니까 말이야. 본래라면 이런 오락거리를 나무라야 하는 입장이지.”

어디까지나 샬레의 일원이라는 형태이긴 하지만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터였다.

수많은 학부모나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고, 모두가 관대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절충안을 찾아내 조율하는 것도 나의 일 중 하나였으니까.

“게임 따윈 시간 낭비일 뿐.

좀 더 학업이나 동아리 활동, 혹은 취업을 중시해야 마땅하다.

그런 의견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단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째서 이런 짓을?”

즉시 되돌아온 케이의 반문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다.

사정이나 상대가 누구든 간에 이런 한밤중에 학생과 게임을 하고 있다.

참으로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어른을 보며 그녀는 유독 의구심을 깊이 품은 모양이었지만…나의 대답은 실로 심플한 것이었다.

“무의미한 것도 즐겁다고 생각하니까.”

모니터에서 아주 조금 눈을 떼자 의아해하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틈을 타 몬스터에게 부딪혔는지 게임오버 효과음이 한 번 울려 퍼진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딱 좋은 타이밍이다.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나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른바 인생의 목적이 다른 곳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그 도중에…옆길로 완전히 새지는 않더라도, 잠시 길을 돌아가는 것 역시 즐거운 법이란다.”

“…그런가요.”

게임은 시간 낭비일 뿐, 장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정답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사람은 결코 국가나 대의명분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니까.

우리에게 있어 그런 효율성의 언어는 절대적인 규칙이 되지 못한다.

“딱히 너의 목표를 번복해 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야.

그것이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이든, 혹은 그보다 더 먼 곳에 있는 사명이든…지금의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아.”

대화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것도 있고 그녀에게 부과된 사명이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다.

내일이 오면 우리는 다시 적이 되겠지만, 적어도 이 밤이 새기 전까지는 그렇게 서로를 증오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사명을 수행하는 틈틈이,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놀아보는 것도…분명 나름대로 재미있지 않겠니.

나는 그저 그렇게 초대하고 있을 뿐이란다.”

“동문서답입니다. 솔직히 이대로 아침을 기다리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컨트롤러를 다시 쥐고 게임오버 화면에서 타이틀로 되돌린다.

플레이하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지 못했으니 중간 세이브 지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혼자라면 조금 벅찬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하아. 딱 한 판뿐이니까요.”

흥미가 생겼는지, 아니면 나의 참견이 귀찮아졌는지. 그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는 마침내 컨트롤러를 쥐어 든 모양이었다.

통통 튀는 효과음이 울려 퍼지며 화면 옆에는 2P 캐릭터가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하하, 살았어. 강화 아이템은 네가 가질래?”

“필요 없습니다. 저의 조작이 훨씬 정교할 것으로 판단되니, 먼저 가시지요.”

스테이지 진행도는 대략 4할 정도, 날이 밝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3시간 남짓.

이제 두 번 다시 없을지 모를 이 한순간을 즐기자.

그렇게 마음속으로 결심하고 나는 십자 레버를 힘차게 밀어젖혔다.

<3>

“─왜 화염 속으로 뛰어든 건가요? 당신은 바보입니까!?”

“…기다려 줘. 그게 아냐, 케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로 케이가 훨씬 잘했다.

보다 정확히 평하자면, 내가 격이 다르게 못 했다고 말하는 편이 맞으리라.

그것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기서 별을 먹었다면 씽씽 달려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변명은 됐습니다. 얼른 컨티뉴나 누르세요.”

아리스와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 특유의 정확성을 가진 그녀와…솔직히 말해 게임은 잘 못 하는 데다 슬슬 밤샘이 피곤해지기 시작한 나.

그 격차는 역력했던 모양인지, 주로 내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아직 최종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겠습니까? 당신은 마스코트 같은 존재입니다.

강화 아이템은 전부 넘길 테니, 제 뒤를 따를 것. 알겠지요?”

“응, 알았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대사지만, 지금은 접어두기로 하자.

둘이 힘을 합친다기보다는, 어떻게든 나를 캐리해 나가는 게임이 되어버린 듯했다.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장소를 맵으로 짚어가며 케이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런 상황은 당초의 상상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었지만…….

“…하하. 즐겁지, 케이?”

“글쎄요. 그저 미션 달성을 중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슨 짓을 한들 무의미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변함이 없었다.

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든 못 하든 변함없이 아침은 올 테니까.

우리의 관계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그녀를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선생님. 아마 다음 플레이가 마지막이 될 겁니다. 작전은 이해하셨습니까?”

“아아, 물론이지. 이번에야말로 발목 잡지 않을게.”

커튼 틈새로 내다보는 하늘은 이미 하얗게 밝아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다른 학생들이나 본래의 주인이 일어날 시간이다.

새들의 울음소리에 재촉당하듯, 우리는 마지막 컨티뉴 버튼을 눌렀다.

그 후 흘러간 고작 십수 분의 시간 동안, 마치 하루 이틀의 세월이 흘러가 버린 것만 같았다.

땀이 배어난 손으로 컨트롤러의 그립을 꽉 쥐고. 버튼과 레버를 누르는 손도 힘이 너무 들어간 탓인지 떨리는 듯했다.

“우왓, 위험해!?”

“…방금 죽었다면, 완전히 사적인 감정으로 목을 졸랐을 겁니다.”

“무서운 소릴 하네……?!”

몬스터를 피하고, 코인을 먹고, 아이템을 쓴다.

그런 찰나의 순간마다 울리는 효과음의 모든 것이 앞으로도 평생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어째서인지 그런 확신마저 들었다.

“보스전입니다만, 알고 계시겠지요? 당신의 실수로 게임 오버가 된다면 정말로…….”

“설마, 말했잖아? 절대로 발목 잡지 않을 테니까 믿어줘.”

“말해두지만, 당신은 지금까지 4번이나 미스를 냈으니까요……?”

결전을 앞두고 그런 대화도 오갔지만, 뒷맛이 씁쓸한 마무리는 나 역시 싫었으니까.

마지막만큼은 실수도 없이 순조롭게 보스전을 헤쳐 나가…우리는 어떻게든 최종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냈다.

“…아아. 이걸로 끝이군요.”

컨트롤러를 내려놓자, 엔드롤이 흐르고 있었다.

커튼을 투과해 어두운 부실 안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복도 너머에서는 잠에서 깬 학생들의 발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후우. 케이도 고생했어, 즐거웠단다.”

“…그런가요.”

붙잡혀 있던 공주님은 주인공에 의해 구출되었고,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린 듯했다.

그런 게임의 연출과 어디선가 연동하듯 케이의 헤일로는 소리를 내며 점멸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그녀는 마그마의 밑바닥으로 사라져 간 악역의 포지션이었다.

“한 가지 말해두자면, 이 기록은 어디에도 남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임시 메모리에 저장된 것이기에 왕녀로 교체되면 삭제됩니다.”

“그렇구나. 뭐, 그런 느낌이 들긴 했지만…그건 조금 쓸쓸하네.”

이것은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끼어든, 말하자면 막간극.

앞으로의 전개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다만, 그래도…결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렇다면 나 역시 한 가지 전해두고 싶은 말이 있어.”

그 눈동자가 다시 물빛으로 돌아가 버리기 전에, 나는 입을 열었다.

마주해 오는 눈동자는 이 수 시간 동안 조금 변해 있는 듯했다.

떠오르는 것은 이 긴 밤이 시작되었던 계기의 일.

“옥상에서 만났을 때, 처음부터 네가 케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건 아냐.

하지만 어떤 한마디 때문에 아리스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

“…그것은 무엇입니까?”

위화감을 확신으로 바꾼 것은 기묘하게도…분명 케이가 더 자연스러울 거라 생각하고 내뱉은 단어였다.

“‘싫다’, ‘무서웠다’…아리스라면 너를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니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확실할 테고, 지금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리스는 케이를 미워하고 있지 않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분명 다른 아이들도 그럴 거야. 벽은 있겠지만 너를 가슴 깊은 곳에서 거부하고 있지는 않아.”

폭력과 지배로만 접한다면 분명 그 네 사람과의 길은 영원히 교차하지 않겠지.

하지만 이 밤처럼…아주 작은 유머와 게임으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면, 그런 미래도 바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러니까 케이. 이 장소에서 언젠가 다시 한번 게임을 하자. 이번에야말로 모두와 다 함께.”

컨트롤러도 게임 소프트웨어도 아직 잔뜩 남아있으니까.

다음엔 무엇을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벌써 기대가 될 정도로.

“…그것은 명령입니까?”

“아니, 그냥 제안이야. 나의, 하물며 너의 사명도 아니란다.”

청색과 보랏빛이 뒤섞인 듯한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한다.

골치 아픈 굴레 따윈 전부 잊어버릴 수 있도록, 나는 마지막으로 미소 지어 보였다.

“─그저, 즐겁다고 생각하니까.”

“…그런가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꼬대라도 하듯 케이는 중얼거렸다.

“그것은, 뭐, OO가 허락한다면, 어쩌면─”

나팔 소리가 높게 울려 퍼진다.

어느새 엔드롤도 끝나 있었다.

밀레니엄에 아침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나는 살며시 커튼을 다시 쳐두었다.

“잘 자렴, 케이.”

“…네. 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

<4>

떠오르는 아침 해에 숨어버리듯 헤일로는 툭 꺼져버렸다.

불과 몇 시간 동안의 추억을 가슴에 품은 채, 나는 가만히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 생님?”

다시 헤일로가 켜졌을 때, 눈을 뜬 눈동자는 물빛이었다.

적지 않은 쓸쓸함과, 그것과 모순되는 듯한 안도감이 나를 엄습했다.

“깼구나, 아리스. 좋은 아침.”

“…아리스는 잠들어 있었던 건가요? 왠지, 조금…드문 일, 이네요.”

잠이 덜 깬 눈으로 그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THE END』라고만 표시되어 있는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선생님. 아리스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몇 번이고 루프되던 BGM이 다음 입력을 기다리며 평온하게 흐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손에 쥐고 있던 컨트롤러를 아리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그건 어떤 꿈이었니?”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 이야기 같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소란스러웠던 방은 이제 거짓말처럼 고요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분명 내 뇌리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내면 어딘가에도 분명히.

“그래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미세하게 온기가 남아있는 듯한 손가락을 아리스는 기도하듯 구부려 쥐었다.

어둡게 꺼진 모니터에 비치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그녀는 마지막으로 나직이 중얼거린다.

“…분명, 무척이나 좋은 꿈이었어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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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5.19번역

소설 핫산) Good Night, xxx.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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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haito_0419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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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캐서린]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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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2026.05.1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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