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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그를 참고 부탁
24. 잠자는 공주님
“흐응~ 선생님 그런 취향이었구나. 좀 의외일지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런 말을 했다.
“아, 별로라는 소리는 아니야. 응. 그냥 뭐랄까. 잘 어울린다는 느낌? 근데 선생님은 옷걸이가 좋아서 사실 뭐든 잘 어울리니까, 이건 참고가 안 될 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센스는 좋다고 생각해.”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이 내 취향을 물어 봤다.
“나? 내 취향? 왜, 왜 그런 걸 묻는 건데? 내 취향이라고 말해도… 지금은 선생님 옷을 사는 거니까. 응. 나 같은 거 보다는 선생님 취향에 맞추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맞아. 확실히 그러기로 했었다.
기껏 선생님과 쇼핑을 할 수 있는데, 언제나처럼 선생님이 내 쇼핑만 거들어 주는 건 아까우니까.
이왕이면 선생님이 다른 옷을 입는 모습도 보고 싶다고나 할까.
“에~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어떻게 돼도 모른다구? 막 아주 부끄러운 옷을 가져와도 입어 줄 거야? 여기 그런 옷도 꽤 있는데. 아. 참고로 그런 걸 입은 내 모습이 보고 싶다고 해도 얼마든지… 괜찮다구? 선생님이라면 보여 줄 수 있어. 소문만 안 낸다면…”
그건 괜찮다고 웃으면서 사양한 선생님이 그래도 내 추천이면 믿어 보겠다는 말을 했다.
“아하하! 선생님. 나한테 그렇게까지 많이 속아 놓고도 아직도 날 믿는다 같은 소리를 해? 하하… 그런가. 참고가 될 지도 모른다니… 응. 그럴지도? 맞아. 타인의 패션 취향 같은 걸 참고하다 보면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잖아? 나도 그런 시도를 안 해 본 건 아닌데. 역시 나기 쨩과 나는 취향이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런 건 있더라구. 역시. 하지만 시도는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
무슨 옷을 입혀 보는 게 어울릴까.
인형 같은 취급을 하는 건 좀 실례일지도 모르니까, 너무 많이 갈아입히는 건 안 될 것 같고.
역시 여기선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껏 말해 줬으니 여기선 기대에 보답해 볼까! 좋아! 선생님! 나만 믿으라구!”
내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한 선생님이 탈의실에 들어갔고, 옷자락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커튼 너머에서 들려 왔다.
뒤돌아서서 그런 소리를 듣는 건 괜시리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그, 그냥 옷을 갈아입는 것 뿐이잖아.
“와…와…오..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지만…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선생님 역시 대단하지 않아?”
시간이 좀 지나자 조금 쑥쓰럽다는 듯이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문을 살짝 열고 나왔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더 당당해도 괜찮을 텐데.
왜냐면 그건 정말로, 정말로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의식조차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래 보이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
“응? 의외로 멀쩡한 옷을 들고 왔다구? 아하하! 뭐래는 거야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이 이런 곳에서 그런 낯뜨거운 옷을 입고 돌아다니게 둘 순 없잖아? 안 된다구 그런 건. 보는 눈이 많으니까. 여기 사람들도 어지간해선 선생님이 누군지 다 안단 말이야. 그런데 나같이 소문 나쁜 애가 그런 걸 입힌 걸 봤다간, 다들 한 소리 할지도 몰라? 선생님도 그런 건 싫지?”
그 말에 장난기 도는 미소를 지은 선생님이 의외의 대답을 했다.
“기…기분좋을 지도 모른다니. 선생님 그런 취향이었어? 우와… 좀 깰지도? 농담이지만! 그래도 뭐, 아, 그…그야… 뭐. 선생님이 그런 취향이 있다면 난…나도 얼마든지 맞춰 줄 수 있는데…라니! 무슨 소리야! 뭘 맞춘다는 건지. 아하하. 뭐래!”
진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 이런 화제에선 빨리 벗어나야지.
“그, 그래도 맞아. 정장이라니 너무 무난한 선택인가?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선생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런 복장 아니겠어? 이건 좀 캐주얼한 물건이지만… 선생님은 샬레 제복도 잘 어울리구, 그래서 역시. 이렇게 살짝 멋부리면 어떤 모습일까~ 해서. 해.,.봤는데. ...혹시 싫었어?”
배려심 넘치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 취향을 칭찬하고, 너희들이 좋다면 나도 이런 걸 더 자주 입어 봐야겠다는, 그런 말.
빈말일지도 모르지만, 듣는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그런 말.
“아, 다행이야! 선생님이 좋다면 나도 좋아! 내가 하는 말이지만, 난 이런 쪽엔 좀 자신이 있다구! 선생님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코디를 맡겨도 좋아! 내 취향, 아니 선생님 취향에 얼마든지 맞춰 줄 테니까! 으응… 여기에 괜찮은 시계만 하나 차면 정말 멋질 텐데.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좀 무리인가? 정장이라니 이미 좀 가격이 나가는 품목이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사양한 선생님이 역시 여기까지 나온 김에 나도 한 벌 쯤 사도 괜찮지 않냐는 말을 했다.
“에, 내, 내 옷? 그런건 아무래도 좋잖아! 오늘은 선생님 물건을 사러 온 거니까! 나, 나는 이미 기숙사에 너무너무너무많은 옷이 있어서! 처치 곤란이라고나 할까! 그, 그래! 맞아. 내가 좀 낭비벽이 있거든. 선생님도 알잖아? 골치 아프단 말이지~ 그런 점이. 티 파티에 있을 땐 문제가 없었는데, 일반 기숙사로 가니까 공간이 좁아져서 말이야. 드레스 룸이랄 것도 없고. 그래서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개인 물품을 더 늘리는 건 좀 문제일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지! 응! 선생님도 알지?”
…이런 이야기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사실은 쇼핑을 하던 때부터 항상 입 안에만 맴돌면서 꺼내지 못한 말 한 마디가 있었다.
언제 말하는 편이 가장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까, 어떻게 말해야 무례하지 않게 들릴까, 계속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저, 저기. 이, 이 옷을 입고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서… 근사한 저녁을 먹자고 하면… 화 낼 거야?"
아... 역시 너무 나간 걸까.
"하지만… 하지만 너무 좋을 것 같고. 나, 날도 이렇게 좋은데. 이미 이렇게까지 어리광을 부렸는데,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조금만 더 있자고 하면… 선생님 시간을 너무 뺏는 거겠지? 선생님 늘 바쁘다고 말했었고. 응. 나도 알지만… 아, 맞아! 밤에도 오늘은 그렇게 춥지 않대!
이것까지 바래서는 안 됐던 걸까.
"그래…서… 혹시…나 하는데. 힘들…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야. 제발 같이 해 줬으면 좋겠어. 거절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어떻게든 내 부탁을 들어 줬으면 좋겠어.
“그, 그야. 나, 나도 좀 바쁜? 편이긴 해도? 선생님만… 좋다면야? 어,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응! 아, 그, 혹시 그… 그런 것까지…시간을 내기에 좀 그렇다면… 그, 간단한 것만 먹고 헤어진다거나. 그런 것도 괜찮아! 간식…? 같은 느낌은 어때? 응?”
아, 안 돼. 왜 이런 내숭을 떠는 거람. 그냥 이럴 땐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나을 텐데.
“...미안해. 너무 떼만 쓰는 것 같지. 선생님이 바쁜 사람인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이렇게 나한테 시간을 내 준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나, 아직도 너무 고집만 부리고… 응. 아직 선생님 말대로 나쁜 아이일지도 모르겠네."
솔직하게 선생님과 저녁을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는 편이 맞는 건데.
"그래도… 오랜만에 선생님을 보니까 좀 반가웠다고나 할까… 참기 어렵네. 역시 이런 기분은.”
그 말을 듣고 조금 고민하던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어쩔 수 없다면서.
‘동정심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지만…
“...정말? 정말? 와! 고마워 선생님! 그럼 나, 좋은 곳을 알고 있거든. 나기 쨩도 꽤 호평했던 곳이라구? 원래는 다른 친구들도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그건 뭐 못 하게 됐고! 선생님도 괜찮아! 아, 아니 선생님이 제일 좋아!"
아니, 선생님은 이런 얄팍한 생각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으면서 그냥 넘어가 주는 거겠지.
"아,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그, 대신이 아니라 그, 선생님만큼 반가운 일행은 없…다고나 할까! 응! 그런 느낌으로! 예약은 안 했지만, 날 위한 자리가 있었으니까… 아직 괜찮을 거야!”
그렇게 오랜만에 찾아온 레스토랑은 기억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인테리어 몇 가지가 바뀌고 테이블 위치가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배치는 다 똑같았다.
익숙한 주문을 마치고 선생님의 주문도 도와 드렸다.
오늘은 내가 고집부려서 찾아온 거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사겠다고 못박아 놨지만,
선생님이 정말로 그걸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치, 응, 백귀야행 영향이려나? 헤드 쉐프가 그쪽에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나 봐. 그 이후로 해산물에 좀 진심이 된 것 같다고나 할까… 조금 취향이 바뀌었지. 하지만 뭐, 레스토랑 메뉴는 원래 주기적으로 바뀌는 법이고, 괜찮지 않아?
아. 뭔가 좀 너무 혼자 떠들었으려나.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을까?
"난 마음에 든다고 생각해! 성게 같은 것도 좀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아, 이 성게 그라탕에 트러플 소스 곁들인 게 꽤 괜찮다고 들었어. 위에 장식된 건 캐비어인 것 같고… 뭔가 비싼 건 다 넣었다는 이미지지? 말한 대로 백귀야행 쪽 영향을 받은 뒤에는 이게 앙트레의 새 시그니쳐가 된 것 같대. 으음… 최근 이야기라 난 처음 먹어 보는 거지만.”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것도 알고 있고 대단하다며, 정말로 흥미로운 기색으로 내 일방적인 음식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때? 마음에 들어? …그렇다니 다행이지만, 정말 페어링 와인은 주문하지 않아도 괜찮아? 뭔가 좀, 그런 걸 우아하게 마시는 선생님이 보고 싶었는데… 그림이 될 것 같지 않아? 아하하. 맞아. 선생님은 아직 바쁘댔지. 맞아. 일이 남아 있으면 음주까진 역시 좀 그렇겠지?”
그건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 저 멋진 모습으로 와인잔을 흔들고 있는 선생님은…
정말로 그림 같겠지. 그것만 가지고도 매일 꿈에 나올 정도일 텐데.
‘꿈?’
…뭐에 나온다고?
“에, 학생이랑 있을 때 그런 건 좀 그렇다고…? 아하하! 선생님 의외로 이런 부분에선 매번 성실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된다니까. 뭔가 좀 안 그럴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응, 맞아. 보충수업부 사건 때도… 가능성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걔들을 도와 주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었지… 그러고 보면… 앗. 미안해. 이 다음은 좀 어두운 이야기지? 걱정하지 마 선생님! 그런 일로 침울해질 생각은 아니니까. 기껏 선생님이 내 준 시간인데, 밝게 있어야지! 맞아! 그러고 보니 저번엔 멧새 구이가 이거 대신 나왔었는데, 세이아 쨩이 엄청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고. 아하하. 웃기지. 아. 웃으면 안 되는 부분인가 이거. 아하하! 하지만 웃긴 걸 어떡해!”
선생님도 따라서 미소지었지만 곧 그런 식으로 놀리면 세이아가 삐지지 않냐는 질문을 했다.
“뭐, 내가 책임지고 클레임을 넣어서 바꿔 주긴 했지만. 좀 너무하지 않아? 세이아 쨩이 힘들어하는 건데 아쉬운 소리는 내가 했어야 했잖아? 으음, 나한테는 항상 그렇게 신랄하면서, 뭔가 다른 사람한테 말을 해야 할 땐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단 말이지. 혼자 꿍해 있고. 마치 말을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하던 선생님이 말했다.
분명 세이아에게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거야. 낯을 가리는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정말 놀랐어. 생각해 보면 내 전용석도 당연히 없어졌겠구나.
왜 아직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 카운터에서 선생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또 선생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뻔 했지 뭐야!”
정말이었다. 이 정도는 어떻게든 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규정을 엄격하게 따지는 모습을 보고 새삼 깨닫고 말았다.
아. 항상 내게 유도리 있게 대처해 주던 건 정말로 이곳의 운영 방침이 그래서가 아니었구나.
그냥 내가 티 파티 일원이라서 그랬었구나.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하니, 선생님도 좀 우스꽝스러웠지! 식기가 너무 많다고 당황하는 모습 말이야! 뭔가 선생님 완전 어른이라는 느낌이라서 이런 곳도 익숙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까 좀 안심되는 그런 느낌? 알겠어? 선생님도 역시 익숙하지 않는 부분이 있구나~ 하고 말이야.”
선생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역시 자기는 이런 분위기는 좀 어색하다고 말했다.
왜 그런 걸까? 선생님 같은 사람만큼 이런 장소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텐데.
이 세상에서 단 한 명에게만 이런 사치가 허락된다면, 그건 선생님이어야만 하는데.
“…응? 어떤, 이미지였냐고? 아, 그, 그게! 그, 선생님이랑, 그… 멋지고 어른스러운 상대가… 뭔가… 앉아서… 우아한 미소를 지으면서 뭔가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그런 걸 상상했었어.”
…맞아. 선생님도 그야, 뭐 있었겠지? 어른이니까. 이렇게 멋진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 정도는.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정했다. 그냥 배려일까? 아니면 정말 없었던 걸까?
…지금은 어느 쪽이라도 좋지만.
“아하하! 뭐야 그게! 나도 어른스러운 여성이라니. 나도 빈말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구 정말! 뭣보다 그런 여성은 이렇게 '혼자' 재잘재잘 떠들지도 않을 것 같고! …아, 그래도 테이블 간격이 넓어서 안 들리는 건 다행이지? 뭔가 선생님 여기 있다는 걸 다들 눈치채면 소동이 날 것 같거든. 그래서 티 파티도 여길 애용했던 거지만. 다 이랬으면 좋겠는데… 회전율이랑 직결되는 부분이니까 뭐 업장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하지만 그런 말을 듣는 건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선생님 입으로 그런 말을 해 주는 것보다 듣기 좋은 말은 없었다.
“...흐응~ 그런가. 지금 이렇게 있으면, 선생님과 저녁을 먹고 있으면, 남들 눈엔 그런 이미지로 비치려나. 그건… 그건 너무 과분한걸. 내게. 하지만…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선생님.”
문득 선생님이 이런 곳에 익숙하지 않아 보인다고 놀렸던 게 생각나서 황급히 부정했다.
“아 오해하지 마 선생님! 이런 곳에 익숙하다고 잰 척 하려는 건 아니야. 이건 그냥 응. 레스토랑일 뿐이고. 이런 데 자주 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 알고 있어. 응.”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이제는… 아니지만.”
선생님이 무언가 친절한 말을 건네 줬다.
“으응, 아니야. 다 선생님 덕분인걸.”
어느 새 식사가 끝나 가고, 분위기가 무거워질까 봐 두려워져 황급히 주제를 한창 나오고 있는 디저트 쪽으로 돌렸다.
“이건 무화과 말린 걸 술에 절인 다음 근처 쇼콜라티에가 만든 고급 생초콜릿에 얹은 건데, 나갈 때 선물로 주기도 한대. 나는 이미 여러 번 먹어 봤으니까 내 것도 선생님에게 줄게. 맛있지? 응? 나도 초콜렛은 언젠가 한번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역시 이 정도 수준은 무리라고나 할까.”
여러 가지 시덥잖은 이야기들이 더해졌다.
이것도 좋아. 저것도 좋아. 선생님이 좋아하니 다행이야.
“...뭔가 좀, 선생님한텐 도움만 받는 것 같네. 그치만 선생님이라면 그게 선생님이 하는 일이니까 당연하다고 말하려나. 아하하. 맞아.”
그러나 식사 시간이 끝나 갈수록, 초조함을 감추기가 더 어렵게 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선생님은? 정말? 정말? 거짓말 아니지?”
감추려고 했지만, 계속 밝은 척을 하려고 했지만, 숨길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티가 날 거야.
“고마워 선생님… 그 말만 들어도 정말 힘이 나는걸.”
이 식사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생님과 이대로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간단한 과일과 커피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자, 싫어도 알게 되고 말았다.
이것이 이 환상적인 저녁의 마지막이라는 걸.
“맛있었어. 그렇지 선생님?”
당연한 미소가 돌아왔다. 여전히 눈부신 미소인걸. 자정까지 햇님이 떠 있다면 그런 모습일 것 같은 미소야.
침묵이 잠깐 다가왔다. 그동안 나왔던 그 많은 음식들이 그간 꾸준히 대화에 기름칠을 해 주고 있었던 것처럼.
커피의 마지막 한 잔을 입에 머금자 하고 싶었던 말이 거짓말처럼 다 사라지고 말았다.
“언제 또 같이 올 수 있으면 좋겠네.”
이제 슬슬 마무리짓지 않으면.
“선생님만 좋다면. 난 언제나 시간을 비울 수 있으니까.”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으면.
“이상하지. 오늘따라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다 행복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 마치 ‘꿈’ 처럼. 그렇지?”
그 말을 하는 순간, 레스토랑의 모든 것이 정지했다.
“…아…”
선생님도, 웨이터도, 배경 쪽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쉐프들도, 주문을 말한 것처럼 단숨에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놀랄 것 없었다. 이렇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꿈이란 건, 으레 눈치채는 순간 끝나는 법이었으니까.
“그런 말을 해서 놀랐어? 미안해 선생님. 이미 알고 있었거든.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건.”
하지만 아무 말도 없는 선생님의 환상에다 대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정말로 대답이 돌아올 것처럼, 금방이라도 여유로운 손짓을 지어 보이며 얼버무릴 것처럼.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을 거야.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아무런 반응 없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는건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언제부터냐니… 그건… 글쎄. 처음부터일까. 미안. 상처받았어? 하지만… 역시 진짜 선생님을 대하는 것처럼 하고 싶었거든. 꿈 속의 선생님이라도 선생님인걸..”
어떤 대답이 들려왔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면 분명 이렇게 물어 봤겠지.
남은 미련들이 이 의미 없는 자신과의 대화를 애써 계속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럴 게, 그럴 리가 없잖아? 선생님이 별다른 일도 없는 내게 먼저 쇼핑 가자고 말을 꺼내 주고, 예쁜 카페에 갔다가, 어울리는 옷도 골라 주고, 이렇게… 이렇게 근사한 레스토랑에도 선뜻 따라나와 주다니. 그럴 리가 없는걸. 응.”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걸 스스로 말하는 건 생각한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말이지… 보고 싶었던 거야. 이게 어떤 느낌인지. 선생님과 함께하는 하루가 어떤 느낌인지. 그래서 뭔가 바깥이… 엉망진창이고, 뭔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채고 있었어도… 깰 수가 없었던 거야. 외면하기엔 너무 멋진 하루였거든.”
…
“나도 알고 있어. 선생님이 날 마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그야 나도 눈치가 조금 없을 뿐이지 아주 바보는 아닌걸. 내가 선생님께 너무 의존할까봐, 어리광만 부리는 응석받이가 되어 버릴까 봐 선생님이 나와 일부러 거리를 둔다는 건 알고 있어. 그야, 모를 리가 없잖아? 선생님 역시 상냥한 사람이고. 나 같은 학생이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걸."
그래.
"믿으니까. 선생님을.”
이게 꿈 속에 불과할 뿐이라도,
“신기하지? 선생님이 그렇게 ‘특별한 방식으로’ 대하는 학생이라고 해 봐야 트리니티, 아니 키보토스에서는 나 정도밖에 없을 텐데. 그것 때문에 이게 꿈이란 걸 눈치채게 되다니. 세이아 쨩 말대로 운명은 알 수 없는 건가 봐.”
누군가가 선생님을 간절하게 그리면서 만든 가짜라도 그건 틀림없이 선생님이 누군가게에 보여 준 모습의 일부였다.
“하하… 선생님 다 티가 난다구. 사비로 수영복 사 주고, 봉사 활동도 같이 해 주고. 그런 걸 어떻게 꼴도 보기 싫은 학생한테 하겠어? 말도 안 되잖아.”
그리고 정말로 꿈 속이기 때문에 이런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면, 솔직하게 감사하는 게 맞겠지.
“…그래도… 그래도… 그래서 더욱… 궁금했어. 평소 같지 않은 선생님이랑 하루 보내면 어떤 기분일지. 다른 학생들과 함께할 땐 선생님이 어떤 느낌인지. 그게 너무 궁금했어. 미안해. 역시 나 못됐지?”
선생님이라면 여기서 무슨 말을 할까?
“...내게는 아마 더 주어질 리가 없는 하루겠지만… 응. 너무 달콤한걸. 무슨 디저트보다도, 어떤 찻잎보다도 더 감미롭고 달콤한… 그런 하루였어. 그냥 이런 꿈을 영원히 꾼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이제 방금 전까지 여러 사람이 배경에 앉아서 식사하던 레스토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게 다른 누군가가 보는 선생님이구나. 이 선생님은 분명 이 “꿈”을 만든 다른 학생이 보는 선생님이겠지? 상상이란 건 그렇잖아.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거니까."
오직 움직이지 않고 아무 말도 않는 선생님과 자신만이 테이블에 앉아서,
무대 위처럼 단 하나 켜진 조명을 내리받고 있었다.
"조금 부럽네. 선생님 다른 학생에겐 이렇게까지 응석을 받아 주는구나. 응. 그건 좀… 많이 부럽네. 좀 질투 날지도. 아아~ 나도 노력하면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걸까. 조금 더 착한 아이가 되면 그렇게 대해 주는 걸까~ 하고.”
하지만 어떤 웨이터도 다가와서 ‘영업 종료 시간입니다 손님’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건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분명, 이 꿈을 만든 아이도 나만큼이나 선생님이 그리웠던 거겠지. 누구보다도 외롭고 쓸쓸한데, 곁에 아무도 없다는 착각이 들고, 이런 일을 저질러 버렸으니, 자긴 이제 더 사랑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그건 사실이 아닌데도 말이야. 그야 선생님 나 같은 아이도 책임지고 따라와 줬는걸. …이건 그런 느낌일까? 나도, 모두도 재워 버릴 만큼 강렬한 그리움일까?”
분명 그렇겠지. 그 애도 나만큼 선생님이 그리웠으니까.
이런 방식 말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찾을 수가 없었던 거야.
“나, 이렇게 됐어도 믿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우릴 버린 게 아니라고. 분명 무슨, 우리한테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정말 급박하고 긴급한 다른 사정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이라고. 그렇지?”
그렇게 말하고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내가 이걸 해결하고 돌아오면, 그때는 정말로 나랑 멋진 데이트를 해 주는 거야. 응? 꿈 속의 선생님이랑 한 거라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반드시 해 줘야 해. 알겠지?”
그렇게 말하며 시간이 멈춘 듯한 선생님의 손을 만지면서 애써 손가락을 걸어 보였다.
“...응. 약속이야. 꼭이야. 어쨌건 반드시 무조건이야. 정말정말 약속이야?”
거기서는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응. 맞아. 시간이 많지 않네.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해야 할 일이 남았는데, 너무 오래 자 버렸어. 내가 구해 줘야지. 선생님이 날 구해 줬듯이… 이번엔 내가 다른 누군가를 구해 주지 않으면. 말했었지 선생님? 내가 남에게 받기를 바라는 만큼 남에게 베풀라고. 지금이 그 기회일 거야. 분명.”
“하지만 그 전에…”
“선생님. 이게 정말… 응석받이 학생을 위해 준비된 선생님의 또다른 모습이라면.”
…
“내 부탁도 한 가지만 더 들어 주지 않을래?”
“이렇게까지 좋은 꿈을 꿔 놓고 더 바란다니 역시 좀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그… 뭐랄까.”
“말하기…좀… 힘들…지만.”
“...한 번만 더 들려 줬으면 좋겠어.”
“날 한 번만 더 그렇게 불러 줬으면… 좋겠어.”
“그때…처럼.”
“...”
“...안 돼?
“한 번이야. 한 번만…”
“상상 속의 이미지지만…”
“이건 그냥 꿈이지만…”
“내가 자각해 버린 이상 대답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진작 깼어야 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부탁해 선생님…”
고개를 숙였다. 무슨 바보 같은 짓이지 이게.
인형에다 말을 거는 어린이처럼.
“부탁…할게…”
대답 같은 게 돌아올 리가 없는데.
이건 그냥 환상일 뿐인걸.
…잠에서 깰 시간이야.
“...!”
그러나 그렇게 체념하는 순간, 뭔가 다른 것을 보고 말았다. 있을 수가 없는 것을 보고 말았다.
정지됐어야 할 화상이, 액자 속의 그림에 불과한 기억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그 사람’의 입가가 너무나도 부드럽게 다시 움직였다.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작은 숨소리가 들리고,
기계적이고,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가짜 환상이 아닌.
언제나와 같은 진실된 모습으로.
그렇게 첫 음절을 떼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아. 이거였구나. 여기가 하이라이트였구나.
이유 같은 건 몰랐다. 원리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이걸, 이걸 볼 수 있어 너무 기쁘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이 가짜 쇼핑, 가짜 레스토랑, 가짜 대화, 가짜 거짓말,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오직 단 하나의 진짜만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구나.
이 짧은 꿈과 환상 중에서 오직 이것만이 진짜였구나.
『잘 다녀 와, 내 잠자는 공주님.』
처음 들은 이후로 삶의 모든 순간을 지배했던 그 마법 같은 단어가 다시 들려왔다.
“...응!”
댓글 21
왔다 내 마약... 선댓 후 감상
너무 아련해...
이런 성장한 미카 좋네요

미황 진짜 성장했네
이토록 연재 기다려지는 장편소설 오랜만이다 진짜
너무 맛있어요
이게 정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