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좀 늦은 기상
기계에 전원을 넣듯이 눈이 떠졌다.
“머리가…너무 아파…”
무슨 일이지? 어제 뭘 하다 잠들었었지?
정신을 차려 보니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옆에 놓인 핸드폰은 방전되기 직전이었고, 화면을 켜자 어째선지 한창 모모톡을 하던 도중이었던 것 같았다.
“누구와… 모모톡을 하다 잠들었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잠든 사이 버그에 걸렸나. 모모톡에 대화 중이었던 상대가 전혀 표시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모모톡 화면은 새하얗기 그지없었다.
모든 대화 기록이 삭제된 채, 자신의 프로필만 덩그러니 띄워 놓고 있었다.
“연락처들은 모두 그대로인데… 정말 이상하네.”
몽롱한 머리가 가능성을 짚어 나갔다. 버그인가 봐. 서버가 나갔거나…
전등 불도 끄지 않았었고. 어째서인지 집안이 난장판이었다.
“헤어 드라이어…? 이런 게 왜 바닥에?”
난 방에서 머리를 말리지는 않는데.
그야 머리카락이 날리기 마련이고… 이상한 점은 그것 말고 많았다.
혹시 자는 사이 도착한 메일이 있나 싶어서 컴퓨터를 켜 보니 클라우드 서버에 접속이 되지 않았다.
“어라? 서버 이상인가? 뭐지?”
메모라던가, 일기라던가, 그런 것들을 모두 개인 계정에 써 두고 있었는데.
하필 이런 때 서버 이상이라니. 곤란한걸. 회의 시간에 보고할 내용도 거기 있고, 지시할 내용도…
“아얏!”
지시… 뭘 지시한다는 거지? 분명 다음 회의는 그냥 연례적인 학회 일정 협의였을 텐데.
아 맞아. 찾아야 했었지. 찾아야…
“아야야!”
무언가 생각이 번득였다 사라지고, 동시에 두통이 자꾸만 엄습했다.
이것도 이상해. 찾는다니 뭘? 말했듯이 오늘 있는 건 그냥 형식적인 회의일 뿐이고…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팠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하자.
분명 잠을 잘못 자서 뭔가 후유증이 온 걸 거야.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고 자서 그런가…”
피부에도 안 좋을 텐데. 그분 앞에서는 항상 예쁘게 있어야 하는…
다시 두통.
“아야!”
누구? 그분이라니 누구?
아. 회장? 하지만 이상하다. 회장 앞에서 왜 예쁘게 보여야 하지?
“회장은 '그분'이라고 부르던 사람도 아니고... 아무튼 지금이 몇 시지?”
오후 한 시.
“세상에! 완전 늦었잖아! 내가 지금까지 자고 있었다고?”
지각은 거의 한 적 없는데.
머리를 감싸쥐고 커튼을 열어젖히니 방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좀 이상할 정도로 많이 어두웠다.
“뭐지? 지금은 거의 정오인데? 왜 벌써 어두운 거지?”
폭풍이라도 오는 건가. 그래서 핸드폰을 봤더니 기상 예보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온도 업데이트도 되지 않았고. 아무런 정보가 뜨지 않았다. 심지어 전파조차 잡히지 않았다.
“에? 뭐야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모모톡도, 클라우드도, 심지어 기상 관제 서버까지 다 나갔다고? 자는 사이에 뭔가 엄청난 일이라도 있었나?
바깥이…깜깜하니까. 뭔가 지진이나 폭풍 같은 게 몰아쳤던 건가. 그것 때문에 서버가 맛이 갔다거나?
골똘히 생각해 봤더니 그 가능성은 생각보다 말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 문제가 있었는데 자고 있었다니. 얼마나 피곤했던 거야…
분명 최근엔 좀 너무할 정도로 과로했던 것 같긴 하지만. 과로라고 하니까, 과로를 왜 했었냐면…
“아얏... 또야!”
대체 두통이 왜 이렇게 심한 거지? 오늘 결석계라도 내야 하나?
하지만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회의에서 나름 중역인 자신이 빠져서는 안 됐다.
통신이 먹통이라 부재 중 전화는 안 와 있었지만, 지금쯤 모두 자신을 간절하게 찾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다행히도 수도와 전기는 잘 작동했다. 황급히 씻고 뭔가 요기라도 때울 것이 없나 찾아보니, 냉장고 안엔 죽이 놓여 있었다.
“뭐지…? 자는 사이 그 애가 놓고 갔나?”
이런! 그렇게 칠칠맞게 자는 모습을 다 보였다는 거잖아! 방도 이렇게 엉망인데! 어쩜 좋아!
“어라… 근데 왜 하필 죽?”
나 병이라도 걸렸었나? 하긴 두통이 심한 것 같기도 하고… 감기 기운이 있었을지도.
숙취가 딱 이런 느낌이었는데… 초콜렛 봉봉을 같이 먹고 취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그때도 이렇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기억이 조금 사라져 있었어.
“그건 그렇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걸 봤으면 좀 깨워서 침대로 가라고 해 줘도 됐을 텐데. 걔도 참…”
죽은 조금 매콤했고, 용기 뚜껑에는 ‘그 뭐냐… 그… 힘내라. 기합이다. 짜샤.’ 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정말 이상하네…”
이것마저 뭔가 수상쩍었다. 이게 뭐람?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로 다른 세상에 오기라도 한 것 같아.
신발을 신고 기숙사 정문을 나서자 바깥 광경은 방 안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기묘했다.
하늘 저편에서 뭔가 불길한 소용돌이 같은 것이 용솟음치고 있고, 공기는 뭔가 탁한 안개가 낀 것처럼 어둠침침했다.
해는 보이지도 않았고,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서서히 더 어두워져 갔다.
길에는 학생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자판기는 불이 꺼져 있지,
매점도 하나같이 다 문을 닫았고, 오로지 드론들만이 아무도 없는 거리를 바쁘게 쏘다니고 있었다.
이쯤 되자 좀 겁이 났다. 뭔가 아포칼립스 영화나 게임이 딱 이런 느낌으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멸망한 세계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뭐 그런 느낌으로.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었지만, 그만큼 보이는 광경은 이질적이었다.
어느 새 학교 본관에 도착했지만 역시나라고 할까. 불이 모두 꺼져 있고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정문에는 ‘무기한 폐쇄’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총학생회로 모든 권한이 임시 이관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뭐야 이게? 그런 말 못 들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잖아?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누가 이걸 지시한 거고?
“나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무엇보다 총학생회 따위가 무슨 권한으로? 그분이 아니라 총학생회가 그럴…
“으윽!”
그분? 그분이 누구길래? 두통이 또 찾아왔다.
이건 정말 엄청나게, 심각한 재난인 것이 틀림없었다. 나만 빼고 다 대피했나?
임시 쉘터 같은 곳으로? 문이 격리돼서 못 나오고 있다던가?
“나 대체…얼마나 잤던 거지…”
핸드폰을 켜고 시계를 다시 봤다. 오후 두 시.
날짜는…
“뭐, 뭐야 이게? 내가 사흘이나 잤다고????”
입이 떡 벌어지는 사실이었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사흘간이나 잠들어 있었다고?
총학생회로 가서 무슨 일인지 설명을 들어야 해.
내가 설명해야 하는 쪽인가. 아무튼!
모든 업무가 이관됐다고 하니까. 그 설명도 들어야 하고.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잖아? 사실 총학생회는 그러라고 있는 곳이었는걸.
무인 택시를 잡아타고 총학생회로 향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보이던 택시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십 분 가까이 기다렸더니 겨우 한 대가 지나쳤다.
그것 말고 다른 차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것처럼,..
길가에 그 어떤 곳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학생도. 수인도. 로봇도 없었다. 모든 가게는 닫혀 있었다.
“믿을 수가… 없네…”
학생회 건물과 가까워지면서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일 분이 십 분만 같이 느껴졌다.
‘제발, 제발 거기만은 사람이 있어 줘…’
이 세계에 설마 나 혼자만이 남았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줘.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총학생회. 차에서 내려 바라보자 거의 어둠에 파묻힌 것 같은 최상층 아래의 회의실 단 한 층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 다행이다! 사람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회의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맞아요 하나코 씨. 시설 담당자가 잠들었기 때문에 지금 샬레 전력 공급이 정지돼 있네요. 문이 잠긴 것도 그래서인 것 같구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 다행이다. 히마리 부장의 목소리야. 이미 안에서는 이 난리를 수습하고 있었구나!
안도감이 파도처럼 물밀고 들어온 나는 회의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실례합니다! 세미나의 하야세 유우카입니다! 제가 너무 늦었죠! 너무 자 버리는 바람에…!”
그녀의 등장을 본 자리의 모두는 얼어붙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본 것 처럼.
“실례합니다! 제가 너무 늦었죠! 너무 자 버리는 바람에…!”
동공이 확장되고, 입이 벌어지고,
그녀의 등장은 그만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우카 씨?”
침묵이 한참 동안이나 유지되다가,
회의실 안의 누군가가 겨우 질문 하나를 꺼냈다.
막연하고, 답이랄 게 없는 그런 질문이었지만, 그 한 마디만큼 모두의 혼란을 잘 대변하는 질문은 없었다.
당신이? 어떻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유우카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좀 늦었기로서니 그게 이렇게까지 반응할 일인가 하는 생각밖에 하고 있지 않았다.
유우카와 눈이 마주친 린 회장 대행이 말했다.
“말도…안 돼… 유우카 씨?”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한참 동안 고개를 저었다.
“잠에서… 어떻게 깨신 건가요?”
유우카 역시 분위기가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에, 잠에서 어떻게 깼냐뇨? 그, 그야 이렇게 오래 자 버렸으니까요! 전 정말… 일어났더니 밖은 깜깜하지, 아무도 없지, 연락은 안 되지… 정말 무서웠다구요…!”
“그럴… 리가…”
“죄송해요. 안 믿으시겠지만 제가 이틀 이상을 잤던 것 같… 대체 다들 왜 그러세요?”
시선을 돌리던 유우카는 그 자리에 나기사 역시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가 든 손 바로 아래에는 방금 박살난 찻잔이 따뜻한 액체를 흥건하게 흘리고 있었다.
‘별일이네.’
유우카는 그녀가 저렇게 놀라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티 파티의 호스트랬나. 아무리 나라도 좀 어려운 상대인데… 다들 왜 저러는 거지?
나기사는 얼어붙은 듯한 그 자세 그대로 유우카에게 천천히 질문했다.
“잠에… 드셨다고 들었는데요. 선생님 일은… 어떻게 추스르신 건가요?”
“선생님요?”
그 질문에 유우카가 잠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머리를 감싸쥐었고, 잠깐의 뜸들임.
"...아야얏..."
다음에 튀어나온 대답은 회의실의 공기를 완전히 박살내기에 충분했다.
마치 지금 분위기마저 지나치게 부드럽다는 듯이.
“...그게 누군데요?”
댓글 11

잠에서 깨도 좋은게 아니네 미친


선생 돌아올때 쯤엔 아무도 기억 못하는거 아니냐